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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위 수상한 뱀, 배 가르자 드러난 끔찍한 진실… 실종된 어머니가?

 인도네시아에서 60대 여성이 거대한 비단뱀에게 공격당해 뱃속에서 숨진 채 발견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현지 경찰은 여성이 뱀에게 공격당한 뒤 통째로 삼켜진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 등 외신은 인도네시아 남술라웨시주에서 실종 신고가 접수된 하시아(66) 씨가 비단뱀의 배 속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하시아 씨는 지난 1일 고무농장에서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실종되었으며, 가족들은 그녀가 늦도록 돌아오지 않자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직접 어머니를 찾아 나선 가족들은 실종 당일 밤 9시경, 풀밭에 움직임 없이 누워있는 거대한 비단뱀을 발견했다. 뱀의 배 부분이 지나치게 부풀어 있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가족들은 뱀을 죽인 후 배를 갈랐고, 그 안에서 하시아 씨의 시신을 발견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시아 씨의 아들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밤늦도록 어머니를 찾아 헤매다 풀밭에 꼼짝 않고 누워있는 거대한 비단뱀을 발견했을 때 직감적으로 불길함을 느꼈다"며 "어머니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돌아가셨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어 너무나 참담한 심정"이라고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경찰은 하시아 씨가 6m에 달하는 거대한 비단뱀에게 공격받아 통째로 삼켜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 지역은 대형 비단뱀 출몰이 잦은 곳"이라며 "농장 주변을 지날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이번 사건을 계기로 주민들에게 비단뱀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안전 교육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과거에도 비단뱀으로 인한 사망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7월에는 아픈 아이 약을 사러 나갔던 30대 여성이 비단뱀 뱃속에서 발견되어 큰 충격을 주었고, 8월에는 70대 여성이 비단뱀에게 어깨까지 삼켜졌다가 뱉어졌지만 결국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도 있었다.

 

이처럼 인도네시아에서는 대형 비단뱀이 사람을 공격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어,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은 비단뱀의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 더욱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전문가들은 비단뱀의 서식지 파괴와 먹이 부족 등이 인간과 비단뱀 간의 충돌을 야기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비단뱀의 공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농장 주변의 잡초를 제거하고, 뱀이 숨어있을 만한 공간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도네시아 정부는 비단뱀 출몰 지역에 대한 안전 관리 강화와 함께 주민들을 위한 안전 교육을 확대하고, 비단뱀 서식지 보호를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인간과 야생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여 더 이상의 안타까운 희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당신이 몰랐던 '항일의 성지'…이 섬에만 365일 태극기가 휘날린다

표지석처럼, 이곳은 인구 2천 명 남짓한 작은 섬에서 무려 8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저항의 성지다. 분단 이후 '빨갱이 섬'이라는 오명 속에 신음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365일 태극기가 휘날리는 민족의 화산으로 자리 잡은 소안도의 뜨거운 역사는 등대와 학교, 그리고 비석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그 저항 정신의 첫 불꽃은 1909년 외딴섬의 등대에서 타올랐다. 동학군 출신 이준하 등 6인은 일본인들이 세운 당사도 등대를 습격해 시설을 파괴하고 일본인들을 살해했다. 이는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빼앗긴 조선인의 독립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소안도 주민 2천여 명 중 800명이 일제의 감시 대상인 '불량선인'으로 낙인찍혔지만, 저항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건은 소안도의 항일 운동에 거대한 불을 지폈다.소안도의 저항은 무력 투쟁에만 그치지 않았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강탈당한 토지 소유권을 되찾기 위해 13년간의 끈질긴 법정 투쟁을 벌여 마침내 승소했다. 주민들은 이를 기념해 1923년 '사립 소안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민족 교육을 통해 항일 인재를 길러내는 독립운동의 핵심 근거지였다. 교사와 학생들은 비밀결사를 조직하며 항일 운동의 최전선에 섰고, 이는 결국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되는 비운을 맞았지만, 그 정신만큼은 꺾을 수 없었다.이 모든 투쟁의 중심에는 송내호 같은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다. 교사였던 그는 무장투쟁 단체를 조직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이며 시대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했다. 그의 형제 중 셋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는데, 어머니의 간절한 만류에 순사가 된 막내아들의 묘비에만 유일하게 태극기 문양이 없다는 사실은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양반 가문이 없어 신분 갈등이 적었고, 일찍부터 외부 세계에 눈떴으며, 교육열이 높았던 소안도의 독특한 환경은 이 작은 섬이 국내외를 아우르는 강력한 저항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