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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사람 아니야?" 론 뮤익의 초현실 인체 조각, 서울에 뜨다

 현대 조각의 거장으로 불리는 호주 출신 조각가 론 뮤익(67)의 아시아 최대 규모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공동 주최로 마련되었으며, 4월 11일부터 7월 13일까지 진행된다.

 

론 뮤익은 놀랍도록 정교하고 실제보다 더 진짜 같은 인체 조각으로 세계 미술계에서 독보적인 명성을 쌓아왔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외형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 내면의 고통, 외로움, 불안 같은 감정을 담아내며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현대인의 삶과 죽음, 그리고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담은 그의 작품은 관객들에게 경탄과 성찰을 동시에 이끌어낸다.

 

이번 회고전은 론 뮤익이 지난 30년 동안 작업한 대표작들을 시기별로 조망할 수 있는 자리다.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5, 6전시실에서 열리며, 총 24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주요 작품으로는 1998년 처음 공개된 ‘유령’(1998/2014), 실제 크기의 약 4배에 달하는 자화상 ‘마스크 II’(2002), 침대에 누운 거대한 인물로 가로 6미터에 이르는 대형 작품 ‘침대에서’(2005), 그리고 암탉과 중년 남성이 마주하는 긴장감 넘치는 ‘치킨 맨’(2019) 등이 있다.

 


특히,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매스’(2016-2017)는 전쟁, 전염병, 기후 위기 등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재난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의 건축적 특징과 역사적 의미를 반영한 특별한 설치 방식으로 선보인다.

 

6전시실에서는 작가의 창작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작업실 사진 연작과 다큐멘터리 두 편도 상영된다. 이외에도 관람객들이 작품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예술적 성찰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워크숍, 디지털 콘텐츠 등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하며 전시 관람료는 5000원이다.

 

론 뮤익은 영화와 텔레비전 분야에서 마네킹과 소품 제작을 시작으로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1996년 조각 *‘죽은 아버지’*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베니스 비엔날레 등 세계적인 무대에서 작품을 선보이며 현대 조각의 새로운 경계를 정의해왔다. 그의 작품은 테이트(영국), 빅토리아 국립미술관(멜버른), 휴스턴 미술관(미국) 등 전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번 전시는 현대 조각의 흐름과 변화를 조망하며, 관람객들에게 인간 존재의 본질과 예술의 의미를 되새기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당신이 몰랐던 '항일의 성지'…이 섬에만 365일 태극기가 휘날린다

표지석처럼, 이곳은 인구 2천 명 남짓한 작은 섬에서 무려 8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저항의 성지다. 분단 이후 '빨갱이 섬'이라는 오명 속에 신음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365일 태극기가 휘날리는 민족의 화산으로 자리 잡은 소안도의 뜨거운 역사는 등대와 학교, 그리고 비석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그 저항 정신의 첫 불꽃은 1909년 외딴섬의 등대에서 타올랐다. 동학군 출신 이준하 등 6인은 일본인들이 세운 당사도 등대를 습격해 시설을 파괴하고 일본인들을 살해했다. 이는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빼앗긴 조선인의 독립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소안도 주민 2천여 명 중 800명이 일제의 감시 대상인 '불량선인'으로 낙인찍혔지만, 저항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건은 소안도의 항일 운동에 거대한 불을 지폈다.소안도의 저항은 무력 투쟁에만 그치지 않았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강탈당한 토지 소유권을 되찾기 위해 13년간의 끈질긴 법정 투쟁을 벌여 마침내 승소했다. 주민들은 이를 기념해 1923년 '사립 소안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민족 교육을 통해 항일 인재를 길러내는 독립운동의 핵심 근거지였다. 교사와 학생들은 비밀결사를 조직하며 항일 운동의 최전선에 섰고, 이는 결국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되는 비운을 맞았지만, 그 정신만큼은 꺾을 수 없었다.이 모든 투쟁의 중심에는 송내호 같은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다. 교사였던 그는 무장투쟁 단체를 조직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이며 시대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했다. 그의 형제 중 셋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는데, 어머니의 간절한 만류에 순사가 된 막내아들의 묘비에만 유일하게 태극기 문양이 없다는 사실은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양반 가문이 없어 신분 갈등이 적었고, 일찍부터 외부 세계에 눈떴으며, 교육열이 높았던 소안도의 독특한 환경은 이 작은 섬이 국내외를 아우르는 강력한 저항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