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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 쏙 빠진 미국 고위당국자 아시아 순방... '비상계엄 후폭풍' 여전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가 아시아 순방 일정에서 한국을 전격 제외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조기 대선으로 이어진 한국의 정치적 혼란이 반영된 결정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 국무부는 15일(현지시간) 공식 발표를 통해 션 오닐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고위관리(Senior Bureau Official)가 16일부터 25일까지 베트남 하노이와 호치민, 캄보디아 시엠립, 일본 도쿄, 하와이 호놀룰루를 방문한다고 밝혔다. 한국은 과거 미국 고위 당국자들의 아시아 순방 코스에 빠지지 않던 핵심 방문국이었으나, 지난해 12월 3일 발생한 비상계엄 사태 이후 불안정한 국내 정치 상황으로 인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연이어 외면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이는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의 행보에서도 확인된다. 헤그세스 장관은 지난달 첫 아시아 순방에서 일본과 필리핀만 방문하고 한국은 일정에서 제외했다.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핵심 동맹국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을 고려해 방문을 회피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은 지난 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을 결정하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다소 해소되는 듯했다. 그러나 아직 새 정부가 구성되지 않은 과도기적 상황이라는 점이 이번 고위 당국자 순방 일정에서 한국이 배제된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오닐 고위관리의 이번 아시아 순방은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발표 이후 중국의 동아시아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로 해석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번 주 베트남·말레이시아·캄보디아 등 동남아 3개국 순방에 나선 것과 맞물려, 관세 갈등 속에서 해당 지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엿보인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오닐 고위관리는 호치민에서 베트남 측 카운터파트와 만나 양국 간 포괄적 전략 파트너십의 기반이 되는 공동 관심사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이어 캄보디아에서 개최되는 제37차 미국·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대화에서 공동 의장으로서 양측 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강화 방안을 모색한다.

 

일본 방문에서는 일본 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미·일 동맹 강화와 경제협력 우선순위에 대해 협의할 계획이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관련한 현안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오닐 고위관리는 마지막으로 하와이 군사시설을 방문해 인도·태평양 지역 미군 주둔 전략에 대해 협의할 예정이다.

 

한국이 미국 고위 당국자의 아시아 순방에서 연이어 제외되는 상황은 한·미 동맹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단면으로 해석된다.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신뢰도가 하락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새 정부 출범 이후 한·미 관계 복원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당신이 몰랐던 '항일의 성지'…이 섬에만 365일 태극기가 휘날린다

표지석처럼, 이곳은 인구 2천 명 남짓한 작은 섬에서 무려 8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저항의 성지다. 분단 이후 '빨갱이 섬'이라는 오명 속에 신음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365일 태극기가 휘날리는 민족의 화산으로 자리 잡은 소안도의 뜨거운 역사는 등대와 학교, 그리고 비석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그 저항 정신의 첫 불꽃은 1909년 외딴섬의 등대에서 타올랐다. 동학군 출신 이준하 등 6인은 일본인들이 세운 당사도 등대를 습격해 시설을 파괴하고 일본인들을 살해했다. 이는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빼앗긴 조선인의 독립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소안도 주민 2천여 명 중 800명이 일제의 감시 대상인 '불량선인'으로 낙인찍혔지만, 저항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건은 소안도의 항일 운동에 거대한 불을 지폈다.소안도의 저항은 무력 투쟁에만 그치지 않았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강탈당한 토지 소유권을 되찾기 위해 13년간의 끈질긴 법정 투쟁을 벌여 마침내 승소했다. 주민들은 이를 기념해 1923년 '사립 소안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민족 교육을 통해 항일 인재를 길러내는 독립운동의 핵심 근거지였다. 교사와 학생들은 비밀결사를 조직하며 항일 운동의 최전선에 섰고, 이는 결국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되는 비운을 맞았지만, 그 정신만큼은 꺾을 수 없었다.이 모든 투쟁의 중심에는 송내호 같은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다. 교사였던 그는 무장투쟁 단체를 조직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이며 시대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했다. 그의 형제 중 셋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는데, 어머니의 간절한 만류에 순사가 된 막내아들의 묘비에만 유일하게 태극기 문양이 없다는 사실은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양반 가문이 없어 신분 갈등이 적었고, 일찍부터 외부 세계에 눈떴으며, 교육열이 높았던 소안도의 독특한 환경은 이 작은 섬이 국내외를 아우르는 강력한 저항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