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큐브

'서울역에서 타는 타임머신'...한 번 타면 다시 돌아오기 싫다는 그 열차의 정체

 한국관광공사(이하 공사)가 충청남도, 충남문화관광재단, 한국철도공사와 손잡고 장항선을 타고 떠나는 특별한 열차 여행 상품 '충남 레트로 낭만 열차'를 선보인다. 이번 상품은 올해 연말까지 총 8회 운영될 예정이다.

 

'충남 레트로 낭만 열차'는 1970~1980년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복고풍 열차 여행으로, 서해안의 숨은 매력을 발견하고 여행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기획됐다. 당일 코스로 구성된 이 여행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열차 자체가 하나의 여행 목적지가 되는 콘셉트로 설계됐다.

 

열차 내부는 70~80년대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해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탑승객들은 창밖으로 펼쳐지는 서해안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통기타 라이브 공연과 아코디언 연주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옛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도시락과 구운 달걀 같은 간식들은 중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열차 안에서는 교복 입기 체험, 딱지치기, 공기놀이 등 다양한 복고풍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어 세대를 아우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과거의 추억을 소환하고 가족 간의 소통을 도모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여행 상품은 서울역, 영등포역, 수원역 등 수도권 주요 역에서 출발하며, 참가자들은 사전에 신청한 기차역에서 하차한 후 시티투어를 통해 해당 지역의 특색 있는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다. 충남의 역사적 명소, 자연 경관, 문화 체험장 등을 방문하며 지역의 숨은 매력을 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공사 관계자는 "이번 '충남 레트로 낭만 열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열차 안에서의 시간도 여행의 일부가 되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고자 기획됐다"며 "코로나19 이후 국내 여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새로운 여행 트렌드를 반영한 이색 상품으로 충남 지역 관광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충남 레트로 낭만 열차' 상품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예약은 코레일관광개발 공식 누리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전화 문의도 가능하다. 복고풍 열차 여행을 통해 추억 속으로의 시간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특별한 경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당신이 몰랐던 '항일의 성지'…이 섬에만 365일 태극기가 휘날린다

표지석처럼, 이곳은 인구 2천 명 남짓한 작은 섬에서 무려 8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저항의 성지다. 분단 이후 '빨갱이 섬'이라는 오명 속에 신음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365일 태극기가 휘날리는 민족의 화산으로 자리 잡은 소안도의 뜨거운 역사는 등대와 학교, 그리고 비석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그 저항 정신의 첫 불꽃은 1909년 외딴섬의 등대에서 타올랐다. 동학군 출신 이준하 등 6인은 일본인들이 세운 당사도 등대를 습격해 시설을 파괴하고 일본인들을 살해했다. 이는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빼앗긴 조선인의 독립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소안도 주민 2천여 명 중 800명이 일제의 감시 대상인 '불량선인'으로 낙인찍혔지만, 저항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건은 소안도의 항일 운동에 거대한 불을 지폈다.소안도의 저항은 무력 투쟁에만 그치지 않았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강탈당한 토지 소유권을 되찾기 위해 13년간의 끈질긴 법정 투쟁을 벌여 마침내 승소했다. 주민들은 이를 기념해 1923년 '사립 소안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민족 교육을 통해 항일 인재를 길러내는 독립운동의 핵심 근거지였다. 교사와 학생들은 비밀결사를 조직하며 항일 운동의 최전선에 섰고, 이는 결국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되는 비운을 맞았지만, 그 정신만큼은 꺾을 수 없었다.이 모든 투쟁의 중심에는 송내호 같은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다. 교사였던 그는 무장투쟁 단체를 조직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이며 시대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했다. 그의 형제 중 셋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는데, 어머니의 간절한 만류에 순사가 된 막내아들의 묘비에만 유일하게 태극기 문양이 없다는 사실은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양반 가문이 없어 신분 갈등이 적었고, 일찍부터 외부 세계에 눈떴으며, 교육열이 높았던 소안도의 독특한 환경은 이 작은 섬이 국내외를 아우르는 강력한 저항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