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2030년까지 플라스틱 30% 감축, 강제성 없는 대책의 한계

 정부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마련한 탈플라스틱 추진 계획의 최종안을 공개했으나, 당초 기대를 모았던 핵심 규제들이 대거 제외되면서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국무회의를 통해 플라스틱 사용량을 원천적으로 줄이고 재활용 체계를 강화하는 로드맵을 발표했지만, 초안에 포함되었던 일회용 컵 추가 비용 징수 방안인 '컵 따로 계산제'는 결국 백지화됐다. 이는 제도 도입 시 음료 가격 인상을 우려하는 소비자와 운영 부담을 호소하는 소상공인들의 거센 반발을 의식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번에 제외된 컵 따로 계산제는 일회용 컵 사용 시 일정 금액을 별도로 부과해 다회용기 사용을 유도하려던 제도였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소규모 카페의 경쟁력 약화와 실질적인 물가 상승 압박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는 업계와의 소통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한발 물러섰지만, 환경단체들은 정부가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환경 정책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규제의 강제성이 사라진 자리에 지자체와의 협력을 통한 자율적 할인 유도만이 남게 되면서 정책의 동력이 약화되었다는 평가다.

 


정부의 일회용품 관련 정책이 혼선을 빚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도입되었던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실효성 논란 끝에 폐기되었고, 매장 내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 조치 역시 계도 기간이 무기한 연장되며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이처럼 규제가 도입되었다가 철회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는 바닥을 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책 설계 단계에서부터 현장의 수용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성급하게 발표하고, 반발이 거세지면 철회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꼬집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최종안에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몇 가지 대안적 조치들이 포함되었다. 정부는 장례식장이나 스포츠 경기장 등 다중이용시설을 중심으로 다회용기 사용을 점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우선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시설부터 다회용기 도입을 의무화하고 이를 민간 영역으로 확산시키겠다는 구상이다. 또한 배달 음식 소비가 늘어남에 따라 발생하는 플라스틱 용기의 두께를 줄여 전체적인 플라스틱 함량을 낮추는 방안도 추진된다.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경제적 부담을 높이는 차등적 폐기물부담금 요율이 적용될 예정이다. 이는 기업들이 제품 설계 단계부터 재활용 용이성을 고려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조치다. 정부는 이러한 대책들을 통해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을 현재 전망치보다 30%가량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공공 부문에서는 세종청사 내 일회용 컵 반입 금지 등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하지만 정부 내부에서도 이번 계획의 실행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무회의에서는 환경 보호라는 명분은 뚜렷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비용 조달 방안이나 단계별 이행 과정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강제적인 규제 대신 자발적인 참여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거대한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결국 이번 탈플라스틱 계획은 환경 보호와 경제적 수용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정부의 고민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본격적인 시행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러시아 국경 옆 시르케네스, 방공호에 새겨진 320번의 공습

'후르티그루텐'은 1893년부터 해안가 34개 항구를 잇는 노르웨이의 생명선 역할을 해왔다. 산과 피오르가 육로를 차단한 지형적 특성상 바다는 노르웨이인들에게 풍경이기에 앞서 유일한 길이었다. 폭풍우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항해하는 이 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노르웨이 사람들의 국민적 기억을 공유하는 움직이는 박물관과 같다.시르케네스 도심 지하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참혹했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방공호 '앤더스그로타'가 숨겨져 있다. 독일군의 군사 거점이었던 이 도시는 4년 동안 무려 320차례의 공습을 견뎌내야 했으며, 시민들은 차갑고 축축한 바위 터널 속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시간을 보냈다. 전기도 화장실도 없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노인이 숨을 거두던 이 공간은 이제 역사의 증언자가 되어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지상의 평화로운 설경 아래 잠든 지하의 상흔은 이 도시가 짊어진 시간의 무게를 실감하게 한다.도시를 벗어나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네이든 지역에는 국경이 갈라놓은 또 다른 아픔이 남아 있다. '아브 박물관'은 노르웨이와 핀란드, 러시아 접경지에 거주해온 원주민 스콜트 사미족의 문화를 보존하는 최전선이다. 19세기 이후 강대국들의 국경 긋기로 인해 생활권이 세 나라로 찢긴 이들은 가족과 생이별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특히 최근의 국제 정세 악화로 러시아 쪽 동족들과의 교류가 완전히 단절되면서, 이들이 겪는 문화적 고립감과 언어 소멸의 위기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사라져가는 스콜트 사미어를 되살리려는 현지의 노력은 눈물겹다. 노르웨이 내에서 이 언어를 일상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인구는 이제 손에 꼽을 정도지만, 박물관의 도슨트들은 수업을 통해 새로운 구사자를 길러내며 언어의 맥을 잇고 있다. 언어는 단순히 소통의 도구를 넘어 한 민족의 정체성과 역사를 담는 그릇이기에, 이들의 수업은 사라진 뿌리를 찾는 고단한 여정과도 같다. 국경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 언어라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민족의 영혼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시르케네스의 여행이 비장미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묵직한 역사를 마주한 뒤 바렌츠해에서 갓 잡아 올린 킹크랩을 맛보는 경험은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가장 선명한 위로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식탁 위에서 여행자들은 방공호의 차가운 공기와 사미어 노래의 애잔함을 되새기며 북극권 항구도시의 매력을 온몸으로 만끽한다. 역사적 상흔과 풍요로운 바다의 혜택이 공존하는 이 독특한 환경은 시르케네스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감동의 원천이 된다.노르웨이의 북동쪽 끝에서 마주하는 시간은 풍경을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인 고통과 회복의 과정을 목격하는 일이 된다. 바닷길을 통해 이어져 온 사람들의 삶과 전쟁이 남긴 흉터, 그리고 소멸에 저항하는 원주민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시르케네스라는 도시의 서사를 완성한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북쪽 끝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보이지 않는 국경 너머로 이어지는 인간의 의지와 문화의 생명력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