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투표지 유출' 조롱남, 벌금 구형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반대 진영을 지지하는 지인을 조롱할 목적으로 기표된 투표용지를 촬영해 전송한 30대 남성이 선거법 위반에 이어 스토킹 범죄 혐의로 법정에 섰다.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에서 열린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피고인 이모 씨에게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벌금 200만 원을 구형했다. 이 씨는 상대방의 명시적인 거부 의사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정치적 조롱이 담긴 연락을 취해 피해자에게 불안감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두 사람의 정치적 성향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10여 년 전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두 사람은 가끔 안부를 묻는 사이였으나, 피해자 A씨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사실을 이 씨가 알게 되면서 갈등이 싹텄다. 이 씨는 A씨의 정치적 성향을 알게 된 이후부터 관련 주제로 대화를 시도하며 장난 섞인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고, 이는 점차 도를 넘는 조롱으로 변질되었다.

 


결정적인 사건은 대선 투표 당일에 발생했다. 이 씨는 자신이 이재명 대통령 후보에게 기표한 투표용지를 기표소 내에서 불법으로 촬영한 뒤 이를 A씨에게 전송하며 조롱했다. 현행법상 기표소 내에서 투표지를 촬영하고 이를 외부로 유출하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이에 분노한 A씨는 이 씨를 선거관리위원회와 수사기관에 신고했고, 결국 이 씨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인정되어 벌금 50만 원의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이 씨의 기행은 선거법 위반 처벌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경찰 조사를 마치고 나온 직후부터 다시 A씨에게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 특정 지역과 정당의 승리를 과시하거나 대통령이 자신의 죄를 사면해 줄 것이라는 내용의 조롱성 메시지를 단시간에 집중적으로 발송했다. A씨가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며 수차례 명확한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전화 통화 시도와 문자 전송은 계속되었다.

 


참다못한 A씨는 결국 이 씨의 지속적인 연락 행위를 스토킹 범죄로 규정하고 경찰에 추가 고소장을 제출했다. 수사기관은 이 씨의 행위가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상대방에게 불안감과 공포심을 유발하는 스토킹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초기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 씨에게 벌금 200만 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했으나, 이 씨 측이 이에 불복하고 정식 재판을 요구하면서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이 씨는 자신의 행동이 선거법 위반 고소에 대한 앙심에서 비롯된 우발적 장난이었다고 항변했다. 또한 피해자 측이 과도한 합의금을 요구하고 정치적 전향을 강요하는 각서 작성을 종용하는 등 오히려 자신을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재판부의 선처를 호소했다. 해당 스토킹처벌법 위반 사건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은 다음 달 19일 해당 지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러시아 국경 옆 시르케네스, 방공호에 새겨진 320번의 공습

'후르티그루텐'은 1893년부터 해안가 34개 항구를 잇는 노르웨이의 생명선 역할을 해왔다. 산과 피오르가 육로를 차단한 지형적 특성상 바다는 노르웨이인들에게 풍경이기에 앞서 유일한 길이었다. 폭풍우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항해하는 이 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노르웨이 사람들의 국민적 기억을 공유하는 움직이는 박물관과 같다.시르케네스 도심 지하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참혹했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방공호 '앤더스그로타'가 숨겨져 있다. 독일군의 군사 거점이었던 이 도시는 4년 동안 무려 320차례의 공습을 견뎌내야 했으며, 시민들은 차갑고 축축한 바위 터널 속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시간을 보냈다. 전기도 화장실도 없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노인이 숨을 거두던 이 공간은 이제 역사의 증언자가 되어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지상의 평화로운 설경 아래 잠든 지하의 상흔은 이 도시가 짊어진 시간의 무게를 실감하게 한다.도시를 벗어나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네이든 지역에는 국경이 갈라놓은 또 다른 아픔이 남아 있다. '아브 박물관'은 노르웨이와 핀란드, 러시아 접경지에 거주해온 원주민 스콜트 사미족의 문화를 보존하는 최전선이다. 19세기 이후 강대국들의 국경 긋기로 인해 생활권이 세 나라로 찢긴 이들은 가족과 생이별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특히 최근의 국제 정세 악화로 러시아 쪽 동족들과의 교류가 완전히 단절되면서, 이들이 겪는 문화적 고립감과 언어 소멸의 위기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사라져가는 스콜트 사미어를 되살리려는 현지의 노력은 눈물겹다. 노르웨이 내에서 이 언어를 일상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인구는 이제 손에 꼽을 정도지만, 박물관의 도슨트들은 수업을 통해 새로운 구사자를 길러내며 언어의 맥을 잇고 있다. 언어는 단순히 소통의 도구를 넘어 한 민족의 정체성과 역사를 담는 그릇이기에, 이들의 수업은 사라진 뿌리를 찾는 고단한 여정과도 같다. 국경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 언어라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민족의 영혼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시르케네스의 여행이 비장미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묵직한 역사를 마주한 뒤 바렌츠해에서 갓 잡아 올린 킹크랩을 맛보는 경험은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가장 선명한 위로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식탁 위에서 여행자들은 방공호의 차가운 공기와 사미어 노래의 애잔함을 되새기며 북극권 항구도시의 매력을 온몸으로 만끽한다. 역사적 상흔과 풍요로운 바다의 혜택이 공존하는 이 독특한 환경은 시르케네스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감동의 원천이 된다.노르웨이의 북동쪽 끝에서 마주하는 시간은 풍경을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인 고통과 회복의 과정을 목격하는 일이 된다. 바닷길을 통해 이어져 온 사람들의 삶과 전쟁이 남긴 흉터, 그리고 소멸에 저항하는 원주민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시르케네스라는 도시의 서사를 완성한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북쪽 끝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보이지 않는 국경 너머로 이어지는 인간의 의지와 문화의 생명력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