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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 된 학남고택…19세기 선비 일기 '눈길'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며 항일 투쟁의 산실 역할을 했던 경상북도 안동의 유서 깊은 전통 가옥이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보호를 받게 된다. 국가유산청은 풍산 김씨 가문이 대대로 모여 살아온 안동시 오미마을 내에 위치한 '안동 학남고택'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공식 지정했다고 발표했다. 이 고택은 단순한 전통 건축물을 넘어 조선 후기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격동의 역사와 한 가문의 굳은 절개를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적 공간으로서 그 보존 가치를 높게 평가받았다.

 

학남고택의 건축적 특징은 서로 다른 시기에 지어진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1759년 김상목이라는 인물이 생활의 중심이 되는 안채를 처음 건립하며 고택의 기틀을 다졌고, 세월이 흘러 1826년에 그의 손자인 학남 김중우가 손님을 맞이하는 사랑채와 대문 옆의 행랑채를 추가로 지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전체적인 평면 구조는 안동 지방 전통 가옥의 전형적인 특징인 'ㅁ'자 형태를 따르고 있으나, 안채와 사랑채가 완전히 맞닿지 않고 분리되어 있는 '튼 ㅁ자' 구조를 띠고 있어 건축사적으로도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된다.

 


이 고택이 지닌 진정한 가치는 건물 자체뿐만 아니라 집안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방대한 양의 역사적 유물들에 있다. 풍산 김씨 문중은 오랜 세월 동안 소중히 보관해 온 옛 서적 630종 1,869책을 비롯해 각종 고문서 39종 8,328점, 그리고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서화류 115점 등 총 1만 360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이 귀중한 자료들은 훼손을 방지하고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전문 기관인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되어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

 

수많은 유물 중에서도 학계의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것은 가문의 인물들이 직접 남긴 생생한 기록물들이다. 학남 김중우의 아들인 김두흠 대부터 증손자인 김정섭 대까지 여러 세대에 걸쳐 꾸준히 작성된 일기류는 19세기 안동 지역 선비들의 일상생활과 사상적 변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핵심적인 창구 역할을 한다. 또한 일제강점기 시절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내며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김응섭의 '칠십칠년회고록'은 당시의 암울했던 시대상과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내역을 상세히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꼽힌다.

 


한편, 국가유산청은 학남고택의 지정 소식과 더불어 서울 지역의 무속 신앙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인 '서울 금성당 무신도'를 새로운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예고했다. 현재 서울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무신도는 인간의 길흉화복과 질병을 다스린다고 믿어졌던 맹인도사, 맹인삼신마누라, 별상 등 다양한 무속 신들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 그림들은 과거 서울과 경기 일대에서 널리 행해졌던 민간 신앙의 구체적인 양상과 지역적 특색을 잘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이 무신도들은 본래 전라남도 나주의 명산인 금성산의 산신 금성대왕과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희생된 조선 세종의 여섯 번째 아들 금성대군을 함께 모시던 굿당인 '서울 금성당' 내부에 걸려 있던 것들이다. 그림 속에 묘사된 신들의 둥글넓적한 얼굴 형태나 길고 섬세하게 표현된 손가락 모양 등은 전통 불교 회화에서 흔히 발견되는 묘사 기법과 유사하여, 불화를 전문으로 그리던 승려인 화승이 제작에 참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의 안료 성분 분석 결과 19세기 후반에 그려진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이 시기에 제작된 무신도가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 그 희소성과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러시아 국경 옆 시르케네스, 방공호에 새겨진 320번의 공습

'후르티그루텐'은 1893년부터 해안가 34개 항구를 잇는 노르웨이의 생명선 역할을 해왔다. 산과 피오르가 육로를 차단한 지형적 특성상 바다는 노르웨이인들에게 풍경이기에 앞서 유일한 길이었다. 폭풍우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항해하는 이 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노르웨이 사람들의 국민적 기억을 공유하는 움직이는 박물관과 같다.시르케네스 도심 지하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참혹했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방공호 '앤더스그로타'가 숨겨져 있다. 독일군의 군사 거점이었던 이 도시는 4년 동안 무려 320차례의 공습을 견뎌내야 했으며, 시민들은 차갑고 축축한 바위 터널 속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시간을 보냈다. 전기도 화장실도 없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노인이 숨을 거두던 이 공간은 이제 역사의 증언자가 되어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지상의 평화로운 설경 아래 잠든 지하의 상흔은 이 도시가 짊어진 시간의 무게를 실감하게 한다.도시를 벗어나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네이든 지역에는 국경이 갈라놓은 또 다른 아픔이 남아 있다. '아브 박물관'은 노르웨이와 핀란드, 러시아 접경지에 거주해온 원주민 스콜트 사미족의 문화를 보존하는 최전선이다. 19세기 이후 강대국들의 국경 긋기로 인해 생활권이 세 나라로 찢긴 이들은 가족과 생이별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특히 최근의 국제 정세 악화로 러시아 쪽 동족들과의 교류가 완전히 단절되면서, 이들이 겪는 문화적 고립감과 언어 소멸의 위기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사라져가는 스콜트 사미어를 되살리려는 현지의 노력은 눈물겹다. 노르웨이 내에서 이 언어를 일상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인구는 이제 손에 꼽을 정도지만, 박물관의 도슨트들은 수업을 통해 새로운 구사자를 길러내며 언어의 맥을 잇고 있다. 언어는 단순히 소통의 도구를 넘어 한 민족의 정체성과 역사를 담는 그릇이기에, 이들의 수업은 사라진 뿌리를 찾는 고단한 여정과도 같다. 국경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 언어라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민족의 영혼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시르케네스의 여행이 비장미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묵직한 역사를 마주한 뒤 바렌츠해에서 갓 잡아 올린 킹크랩을 맛보는 경험은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가장 선명한 위로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식탁 위에서 여행자들은 방공호의 차가운 공기와 사미어 노래의 애잔함을 되새기며 북극권 항구도시의 매력을 온몸으로 만끽한다. 역사적 상흔과 풍요로운 바다의 혜택이 공존하는 이 독특한 환경은 시르케네스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감동의 원천이 된다.노르웨이의 북동쪽 끝에서 마주하는 시간은 풍경을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인 고통과 회복의 과정을 목격하는 일이 된다. 바닷길을 통해 이어져 온 사람들의 삶과 전쟁이 남긴 흉터, 그리고 소멸에 저항하는 원주민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시르케네스라는 도시의 서사를 완성한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북쪽 끝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보이지 않는 국경 너머로 이어지는 인간의 의지와 문화의 생명력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