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아리셀 참사 항소심 대폭 감형, 중대재해법 무력화 논란

 스물세 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아리셀 리튬전지 공장 화재 참사의 책임자들에 대한 항소심 재판 결과가 나오면서 유가족들의 슬픔과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다. 2026년 4월 28일,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아리셀 경영진의 형량을 대폭 줄여준 이심 재판부의 결정을 강하게 규탄했다. 이들은 참사 발생 이 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이 또 다른 비극을 잉태할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유가족들은 경영진의 명백한 안전 불감증과 위법 행위가 빚어낸 인재임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이를 엄중히 꾸짖지 않았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참사 당시 아리셀 경영진은 리튬전지의 화재 및 폭발 위험성을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안전 수칙조차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과거 수차례의 유사 사고와 외부 기관의 경고가 있었지만, 이들은 발열 감지기 설치나 소방 훈련, 대피 매뉴얼 마련 등 필수적인 재해 예방 조치를 철저히 외면했다. 심지어 대형 참사가 발생하기 불과 이틀 전에도 폭발 사고가 있었으나 공장 가동을 강행하는 등 이윤 추구에만 매몰되어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방치했다. 이러한 총체적인 안전 관리 부실이 결국 대규모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는 것이 일심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비상구 설치 의무와 관련하여 일심과 상반된 해석을 내놓으며 경영진의 책임을 크게 덜어주었다. 일심은 위험 물질을 취급하는 공장의 모든 층에 대피를 위한 비상구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보았으나, 이심은 건축물 전체를 기준으로 비상구가 하나라도 존재한다면 법령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즉, 화재가 발생한 이층에 비상구가 없었더라도 일층에 비상구가 설치되어 있었으므로 비상구 설치 의무를 어긴 것은 아니라는 논리다. 이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화재의 급격한 확산 속도를 고려하지 않은 비상식적인 법리 해석이라며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항소심 판결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유가족과의 합의를 양형에 과도하게 반영했다는 점이다. 일심 재판부는 기업이 평소 안전 투자를 소홀히 하다가 사고 발생 후 막대한 자금력으로 유가족과 합의하여 처벌을 피하려는 관행을 지적하며 합의의 양형 반영을 엄격히 제한했다. 하지만 이심 재판부는 합의를 양형에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으면 피고인의 피해 회복 노력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감형 사유로 삼았다. 유가족들은 생계의 어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합의에 응했을 뿐 용서한 것은 아니라며, 재판부의 이러한 판단이 유가족에게 심각한 이차 가해를 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재판 과정에서 유가족들이 겪은 부당한 대우와 압박도 도마 위에 올랐다. 사측은 합의를 종용하며 회사의 폐업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유가족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고, 재판부 역시 유가족의 발언권을 제한하고 강압적인 태도로 재판을 진행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심지어 이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될 경우, 경영진이 오히려 국가를 상대로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형사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길까지 열리게 되어 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검찰은 항소심 재판부의 법리 오해와 양형 부당을 이유로 즉각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검찰은 이심 판결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노동자의 생명 보호라는 헌법적 가치를 저버렸다고 지적했다. 이제 공은 대법원으로 넘어갔으며, 최고 법원이 하급심의 엇갈린 판결을 어떻게 바로잡고 중대재해에 대한 사법적 기준을 명확히 세울지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러시아 국경 옆 시르케네스, 방공호에 새겨진 320번의 공습

'후르티그루텐'은 1893년부터 해안가 34개 항구를 잇는 노르웨이의 생명선 역할을 해왔다. 산과 피오르가 육로를 차단한 지형적 특성상 바다는 노르웨이인들에게 풍경이기에 앞서 유일한 길이었다. 폭풍우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항해하는 이 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노르웨이 사람들의 국민적 기억을 공유하는 움직이는 박물관과 같다.시르케네스 도심 지하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참혹했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방공호 '앤더스그로타'가 숨겨져 있다. 독일군의 군사 거점이었던 이 도시는 4년 동안 무려 320차례의 공습을 견뎌내야 했으며, 시민들은 차갑고 축축한 바위 터널 속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시간을 보냈다. 전기도 화장실도 없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노인이 숨을 거두던 이 공간은 이제 역사의 증언자가 되어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지상의 평화로운 설경 아래 잠든 지하의 상흔은 이 도시가 짊어진 시간의 무게를 실감하게 한다.도시를 벗어나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네이든 지역에는 국경이 갈라놓은 또 다른 아픔이 남아 있다. '아브 박물관'은 노르웨이와 핀란드, 러시아 접경지에 거주해온 원주민 스콜트 사미족의 문화를 보존하는 최전선이다. 19세기 이후 강대국들의 국경 긋기로 인해 생활권이 세 나라로 찢긴 이들은 가족과 생이별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특히 최근의 국제 정세 악화로 러시아 쪽 동족들과의 교류가 완전히 단절되면서, 이들이 겪는 문화적 고립감과 언어 소멸의 위기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사라져가는 스콜트 사미어를 되살리려는 현지의 노력은 눈물겹다. 노르웨이 내에서 이 언어를 일상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인구는 이제 손에 꼽을 정도지만, 박물관의 도슨트들은 수업을 통해 새로운 구사자를 길러내며 언어의 맥을 잇고 있다. 언어는 단순히 소통의 도구를 넘어 한 민족의 정체성과 역사를 담는 그릇이기에, 이들의 수업은 사라진 뿌리를 찾는 고단한 여정과도 같다. 국경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 언어라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민족의 영혼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시르케네스의 여행이 비장미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묵직한 역사를 마주한 뒤 바렌츠해에서 갓 잡아 올린 킹크랩을 맛보는 경험은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가장 선명한 위로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식탁 위에서 여행자들은 방공호의 차가운 공기와 사미어 노래의 애잔함을 되새기며 북극권 항구도시의 매력을 온몸으로 만끽한다. 역사적 상흔과 풍요로운 바다의 혜택이 공존하는 이 독특한 환경은 시르케네스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감동의 원천이 된다.노르웨이의 북동쪽 끝에서 마주하는 시간은 풍경을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인 고통과 회복의 과정을 목격하는 일이 된다. 바닷길을 통해 이어져 온 사람들의 삶과 전쟁이 남긴 흉터, 그리고 소멸에 저항하는 원주민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시르케네스라는 도시의 서사를 완성한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북쪽 끝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보이지 않는 국경 너머로 이어지는 인간의 의지와 문화의 생명력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