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법원 "구미시 공연 취소 위법", 이승환 손배소 일부 승소

 법원이 가수 이승환씨의 경북 구미 공연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구미시의 행정 처분이 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행정 책임자의 태도를 둘러싼 잡음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1심 재판부는 구미시가 공연 이틀 전 내린 취소 결정이 객관적 근거가 부족한 위법 행위라고 판단해 아티스트와 소속사, 그리고 예매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판결 직후 김장호 구미시장이 사과 대신 자신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사건은 감정 섞인 2라운드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2024년 말 발생한 비상계엄 사태와 그에 따른 정치적 해석 차이에서 비롯됐다. 당시 구미시는 이승환씨가 탄핵 촉구 집회에 참여했다는 점을 근거로 지역 보수단체와의 충돌 가능성을 제기하며 공연 대관 허가를 취소했다. 시측은 안전사고 예방을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재판부는 이를 막연한 추측에 근거한 행정권 남용으로 보았다. 특히 공연 전 아티스트에게 정치적 발언 금지 서약서를 요구한 행위 등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법원의 유죄 취지 판결에도 불구하고 김 시장은 개인적 배상 책임이 면제되었다는 점을 부각하며 시정의 정당성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시민 안전을 위한 원칙적 결정이었음을 재차 강조하며, 향후 법적 대응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러한 대응은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기보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방어하는 데 급급하다는 비판을 불러일으키며 지역 여론을 더욱 악화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이승환씨는 김 시장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기만적인 행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그는 판결문을 인용해 당시 시가 주장한 위험 요소들이 검토조차 되지 않은 허구였음을 꼬집으며,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면 소송 결과를 수용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던졌다. 아티스트 측은 이번 소송이 단순히 금전적 보상을 넘어 공권력에 의한 문화예술 탄압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목적임을 분명히 하며 김 시장의 결단을 촉구했다.

 


지역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들도 일제히 구미시를 향해 비판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 야권은 이번 판결을 정치적 판단이 행정을 압도한 전형적인 '불통 행정'의 결과로 규정하고, 패소로 인해 발생하는 배상금과 소송 비용 등 시민 혈세 낭비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단체는 김 시장이 공적 자금이 아닌 사비로 배상액을 충당해야 한다며 시장직 사퇴까지 거론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이번 판결은 구미 지역 선거판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여권 내부에서도 지도부의 경직된 행정이 중도층 이탈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양측의 입장 차이가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구미시가 항소를 선택할 경우 이번 사건은 대법원까지 이어지는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법적 공방이 길어질수록 행정 신뢰도 하락과 지역 사회의 분열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약용의 500권 저술 산실, 다산초당의 인문학

는 결과가 아니라, 발길 닿는 구간마다 깃든 땅의 역사와 대화하며 천천히 걷는 과정에 있다. 그중에서도 전남 강진을 지나는 남파랑길 83코스는 조선의 대유학자 다산 정약용의 고립과 깊은 사유가 층층이 쌓인 공간으로 여행자들을 이끈다. 약 17.5km에 달하는 이 길의 중심에는 야생 차나무가 무성해 '다산'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만덕산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강진 유배 시절 다산의 삶은 만덕산 자락의 백련사와 그곳에서 만난 혜장선사와의 인연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1805년 봄, 유배객 신분으로 처음 백련사를 찾은 정약용은 주지였던 혜장과 학문적 깊이에 감복하며 신분을 초월한 우정을 쌓기 시작했다. 절망적인 유배 생활 속에서 혜장은 다산에게 지적인 동반자이자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1808년 다산이 백련사 인근의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긴 후 두 사람이 수시로 오갔던 800m의 산길은 오늘날 '우정길'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도보 여행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한다.다산초당은 단청조차 없는 소박한 목조 건물이지만, 그곳에 머문 11년 동안 정약용은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등 5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유배라는 물리적 억압조차 그의 사유의 깊이를 가둘 수 없었음을 증명하듯, 초당 곳곳에는 선비의 여유와 기품이 흐른다. 만덕산 능선에서 내려다보이는 강진만의 풍경은 고독한 유배객의 시선을 넓혀주었을 것이며, 지천에 널린 야생 차나무는 그의 호가 된 '다산'의 유래가 되어 오늘날까지 그 향기를 전하고 있다.강진을 지나 해남으로 발길을 옮기면 달마산 미황사에서 땅끝탑으로 이어지는 남파랑길 90코스가 여행자를 맞이한다. 이 구간의 하이라이트는 기암괴석 사이에 제비집처럼 자리 잡은 도솔암이다.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어 400여 년간 빈터로 남아있던 이곳은 2002년 법조 스님의 원력으로 복원되었다. 헬기조차 접근하기 힘든 험지에 암자를 세우기 위해 산 아래에서 자재를 미리 깎고 단청까지 칠해 올라와 조립한 '사전 제작 방식'의 서사는 수행자의 지독한 정진을 짐작하게 한다.한 칸 남짓한 작은 규모의 도솔암은 거대한 바위 성벽에 둘러싸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은 남해의 일출과 서해의 낙조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천혜의 명당으로, 암자 앞마당에 서면 탁 트인 바다와 달마산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무가 밀려오는 날이면 마치 구름바다 위에 떠 있는 신선의 거처와 같은 풍경을 연출하며 보는 이의 넋을 잃게 만든다. 작은 공간 안에 고요와 수행의 서사를 압축해 놓은 도량의 품격은 길 위에서 지친 여행자의 마음을 정화해 주기에 충분하다.코리아둘레길 남도 구간은 이처럼 유학자의 고뇌와 수행자의 원력이 교차하는 인문학적 성지다. 길은 단순히 흙과 돌로 이루어진 통로가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인물들이 남긴 사유의 흔적을 따라 걷는 시간 여행의 통로가 된다. 완주라는 목표에 매몰되지 않고 발걸음을 늦출 때 비로소 보이는 풍경들은 우리 국토가 간직한 깊은 서사를 들려준다. 만덕산의 차 향기와 달마산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 이 여정은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휴식과 성찰의 의미가 무엇인지 묵묵히 웅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