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슈

AI로 100년 전 표지 모델 변신, 국중도 '모던 매거진' 인기

 현대 사회의 정보가 짧고 휘발성 강한 온라인 텍스트로 대체되는 가운데, 100년 전 종이 매체에 새겨진 치열한 사유와 낭만을 되짚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리고 있는 '모던 매거진-조선의 힙스터 아카이브' 전시는 근대 잡지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당대 선구자들의 공론장이자 대중의 놀이터였음을 증명한다. 이번 전시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압박 속에서도 문화적 자부심을 지키려 했던 젊은 지성인들의 기록물을 통해 잡지가 지닌 본연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전시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1930년대 모던과 낭만의 정서를 이끌었던 문예 동인지들이다. 그중에서도 1934년 창간된 '삼사문학'은 당시 젊은 문인들이 초현실주의라는 새로운 예술 사조를 국내에 도입하며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매체다. 특히 1936년에 발행된 5호의 표지는 20대 시절의 김환기 화백이 직접 그린 추상화로 장식되어 있어, 한국 추상미술의 태동기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이는 잡지가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과 디자인 등 시각 예술의 실험장 역할까지 수행했음을 보여준다.

 


여성 인권과 해방에 대한 갈망이 응축된 기록물들도 관람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1920년대 근대 여성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 매호 절판을 기록했던 '신여성'은 당대 여성 독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했던 혁신적인 매체였다. 또한 시인 백석의 불후의 명작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된 1938년 3월호 '여성' 잡지도 실물로 전시되어 문학적 감동을 더한다. 이러한 잡지들은 당시 여성들이 겪었던 사회적 제약과 이를 극복하려 했던 의지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잡지의 영역이 점차 확장되면서 대중문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잡지들도 대거 등장했다. 해학과 취미를 전면에 내세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별건곤'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최장수 발행 기록을 가진 '삼천리', 그리고 언론사에서 발행하며 전문성을 확보했던 '신동아'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80여 종의 희귀 근대 잡지들은 오랜 시간 축적된 전문성과 기록성을 바탕으로 한 시대의 지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전파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정수로 꼽힌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유물을 관람하는 것에서 나아가 최신 기술과의 결합을 시도했다. 전시장 마지막 구역에 마련된 체험 코너에서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관람객이 직접 근대 잡지의 주인공이 되어볼 수 있다. 관람객이 사진을 촬영하면 AI가 당시의 화풍과 편집 스타일을 반영해 100년 전 잡지 표지 모델처럼 합성해 주는 방식이다. 이러한 시도는 젊은 세대에게 근대 문화를 보다 친숙하게 전달하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문화적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근대 잡지 아카이브를 통해 우리 문화의 뿌리를 확인하는 이번 전시는 오는 6월 21일까지 관람객을 맞이한다. 국립중앙도서관 측은 이번 전시가 잡지라는 매체가 담아온 공공성과 문화적 가치를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100년 전 조선의 힙스터들이 꿈꿨던 세상과 그들이 남긴 치열한 기록들은 오늘날 디지털 홍수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기록의 힘'이 무엇인지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관람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하고 있다.

 

벽화마을 원조 동피랑부터 해저터널까지, 통영 골목길 탐방

0여 년 전 학익진으로 왜군을 섬멸했던 격전의 현장이지만, 지금은 가두리 양식장 부표가 점점이 떠 있는 평화로운 바다로 변모했다. 섬 입구의 거북등대를 지나 제승당에 들어서면 삼도수군통제사로서 작전을 지휘하던 장군의 고뇌가 느껴진다. 특히 바다 건너 과녁을 향해 활을 쏘던 한산정은 밀물과 썰물의 차이를 전술에 활용하려 했던 장군의 치밀한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장소다.통영이라는 지명 자체가 '삼도수군통제영'의 줄임말에서 유래했을 만큼, 이 도시는 조선 수군의 총사령부로서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604년 현재의 통영항 일대로 본영을 옮긴 통제영은 군사적 요충지를 넘어 나전칠기 등 공예 생산의 중심지로서 지역 경제와 문화를 꽃피웠다. 비록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많은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본관이었던 세병관은 여전히 웅장한 자태로 남아 통영의 뿌리를 증명한다. 통제영의 역사는 통영이 단순한 항구 도시를 넘어 문화적 자부심이 강한 도시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다.자연이 빚어낸 한려수도의 비경은 미륵산 정상에서 그 정점을 찍는다. 케이블카를 이용해 손쉽게 오를 수 있는 이곳은 국립공원 100경 중 으뜸으로 꼽히며, 맑은 날에는 지리산 천왕봉과 일본 대마도까지 조망할 수 있는 탁 트인 시야를 제공한다. 전망대 근처의 '귀신 잡는 해병' 표지판은 6.25 전쟁 당시 통영상륙작전의 승전보를 전하던 종군기자의 문구에서 유래했다는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을 전한다. 산 아래로 펼쳐진 섬들의 군무는 왜 이곳이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지 단번에 납득하게 만든다.통영의 골목길은 예술가들의 영감으로 가득 차 있다. 동쪽 비탈 마을인 동피랑은 철거 위기를 딛고 벽화 마을로 거듭나며 전국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고, 서쪽의 서피랑은 유치환과 김춘수 등 문학인들의 감성을 담은 소박한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통영반도와 미륵도를 잇는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은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와 토목 기술이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이다. 바다 밑 13m 아래를 걷다 보면 머리 위로 지나가는 배의 진동이 느껴지는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으며, 이는 통영만이 가진 입체적인 매력을 더해준다.예술의 향기는 시내 곳곳에서 파도처럼 밀려온다. 현대 음악의 거장 윤이상과 소설 '토지'의 박경리, '꽃'의 시인 김춘수 등 한국 예술사의 거성들이 모두 통영 출신이다. 특히 화가 이중섭은 피란 시절 통영에서 2년간 머물며 '황소'와 '흰소' 등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는데, 이 시기는 그의 예술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르네상스로 평가받는다. 매년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와 박경리 기념관, 윤이상 기념관 등은 통영이 왜 '예술가를 낳는 땅'이라 불리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보여주는 문화적 자산들이다.통영 여행의 완성은 오감을 자극하는 미식에 있다. 봄철의 별미인 도다리쑥국은 해풍을 맞고 자란 쑥과 자연산 도다리가 만나 비린 맛 없이 향긋하고 시원한 국물 맛을 자랑한다. 통영 특유의 술 문화인 '다찌'는 정해진 메뉴 없이 그날의 제철 해산물이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지는 풍성함의 극치다. 여기에 멍게비빔밥과 충무김밥, 달콤한 꿀빵까지 더해지면 통영의 맛을 온전히 느꼈다고 할 수 있다. 호국과 예술, 그리고 미식이 어우러진 통영의 봄은 이 계절이 다 가기 전에 반드시 경험해야 할 축복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