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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까지 가세한 '어쩔수가없다' 팀, 백상 비매너 빈축

 최근 개최된 제62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 부문 남자 조연상을 거머쥔 배우 이성민의 발언이 거센 후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성민은 수상의 기쁨을 누려야 할 자리에서 같은 작품에 출연한 동료 염혜란의 수상 불발을 언급하며, 속으로 욕을 했다는 취지의 농담을 던졌다. 이는 앞서 영화 부문 여자 조연상을 받은 배우 신세경이 현장에 자리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 더욱 문제가 되었다. 동료를 향한 위로의 뜻이었다고는 하나, 공식적인 석상에서 다른 수상자의 성과를 깎아내리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기 때문이다.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해당 영화를 연출한 박찬욱 감독의 발언으로 이어지며 더욱 심화되었다. 작품상을 받기 위해 무대에 오른 박 감독은 심사의 공정성을 언급하면서도 염혜란은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농담을 덧붙였다. 신세경의 연기력을 치켜세우며 상황을 수습하려는 기색은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특정 팀이 반복해서 한 명의 수상자를 화두에 올리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불쾌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당사자인 염혜란 역시 시상자로 나서 자신을 낙방한 사람으로 소개하며 자조적인 농담을 던져 분위기를 묘하게 만들었다.

 


대중의 비판은 이성민의 발언이 정당한 심사 결과를 부정하는 것처럼 비춰졌다는 점에 집중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상에서는 아무리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 해도 공식적인 시상식에서 타인의 수상을 축하하기보다 자사 팀의 불발을 아쉬워하는 데 치중한 것은 경솔했다는 성토가 쏟아졌다. 특히 신인도 아닌 베테랑 배우와 거장 감독이 후배 배우의 영광스러운 순간을 배려하지 못한 채 본인들만의 리그를 즐겼다는 지적이 뼈아프게 다가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발언들이 시상식 특유의 경직된 분위기를 깨기 위한 재치 있는 농담이었다는 옹호론도 제기된다. 박 감독과 염혜란의 발언은 앞선 이성민의 실언을 무마하고 신세경에게 미안함을 전하려는 의도가 포함된 고도의 유머였다는 해석이다. 염혜란의 자조적인 자기소개 역시 시상식의 긴장감을 덜어주려는 연륜 있는 배우의 여유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옹호론은 반복된 언급으로 인해 그 진정성을 의심받는 상황에 처했다.

 


실제로 누리꾼들은 한 번의 농담으로 끝났어야 할 이야기가 시상식 내내 되풀이된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고 있다. 여러 명이 돌아가며 특정 수상자를 언급하는 행위는 농담의 범주를 넘어선 조롱이나 비꼬기로 읽힐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신세경이 대화에 참여할 수 없는 일방적인 상황에서 그녀의 이름이 계속해서 소환된 것은 명백한 결례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는 시상식의 주인공인 수상자들에 대한 예우가 사라진 한국 시상식 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비판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신세경은 이번 논란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으나, 그녀의 개인 채널에는 수많은 팬과 일반 대중의 응원 메시지가 쇄도하고 있다. 정당한 연기력으로 인정받은 배우가 선배들의 부적절한 언행 때문에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모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화려한 축제의 장이어야 할 시상식이 누군가에게는 소외감과 불편함을 주는 자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며, 연예계 전반에 품격 있는 수상 소감과 동료애에 대한 깊은 고민을 안겨주었다.

 

 

 

윈난 지눠산, 300년 탄압 딛고 부활

기술을 통해 독자적인 공동체 문화를 유지해 왔다. 특히 지눠산은 과거 청나라 시절부터 보이차의 핵심 산지로 명성을 떨쳤으며, 이곳에서 생산되는 찻잎은 그 품질과 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영광은 오히려 외부 세력의 질시를 불러일으켰고, 지눠족은 오랜 시간 동안 혹독한 수난의 역사를 감내해야 했다.지눠족의 기원에는 삼국시대 제갈공명과 관련된 흥미로운 전설이 서려 있다. 남만 정벌 당시 대열에서 이탈한 촉나라 병사들이 현지 토착민과 결합하여 형성된 민족이라는 설이다. 이 때문에 지눠족은 제갈공명을 단순한 정복자가 아닌 차 씨앗을 전해준 '차의 조상'으로 숭배하며 매년 차조회를 열어 경의를 표한다. 외부인을 배척하기보다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여 민족의 번영을 꾀했던 이들의 개방적인 태도는 씨족 내 혼인을 엄격히 금지하고 외지인과의 결합을 장려했던 독특한 혼인 풍습에서도 잘 드러난다.이들이 보유한 차 제조 기술은 현대 차 문화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찻잎을 숯불에 구워 우려내는 '화소차'는 일본의 유명한 호지차보다 훨씬 앞선 전통을 자랑하며, 고온 로스팅을 통해 카페인 부담을 낮춘 것이 특징이다. 또한 찻잎을 달여 고체 형태로 만든 '차고'는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차로 평가받을 만큼 혁신적인 기술력을 보여준다. 찻잎을 나물처럼 무쳐 먹는 '량반차' 습속은 차를 단순한 음료가 아닌 생존을 위한 식량으로 활용했던 소수민족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그러나 지눠족의 차 산업은 청나라의 가혹한 통치 아래 철저히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다. 18세기 한족 상인과의 갈등을 빌미로 시작된 청나라의 보복은 마을과 다원을 잿더미로 만들었고, 이후 약 177년 동안 지눠족의 독자적인 차 생산은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딴 찻잎을 인근 지역인 이우나 이방으로 보내야만 했으며, 그 과정에서 지눠산의 명성은 점차 퇴색되었다. 20세기 들어서도 전쟁과 내전의 화마를 피하지 못한 채 고귀한 차산은 화전민들의 터전으로 변하며 그 규모가 급격히 축소되었다.몰락의 길을 걷던 지눠족에게 반전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20세기 말 보이차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밀림 속에 방치되었던 수백 년 수령의 고차수들이 다시 발견되었고, 여기서 생산된 고수차가 시장에서 천문학적인 가격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300년 넘게 이어온 탄압과 빈곤의 사슬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지눠족은 자신들의 녹색 보물인 차나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경제적 자립을 꾀했고, 그 결과 2019년 윈난성 소수민족 중 가장 먼저 완전한 빈곤 퇴치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현재 지눠산은 사통팔달의 도로망이 구축되어 외부와의 소통이 원활해졌으며, 아열대 기후의 이점을 살린 차 재배는 여전히 이들의 주된 수입원이다. 지눠족은 제갈공명의 탄생일에 풍등을 올리며 조상을 기리는 전통을 이어가는 동시에, 현대적인 차 가공 기술을 접목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과거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지눠족은 이제 윈난성을 대표하는 차 생산지로서의 위상을 회복하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토템 신앙과 문화를 보존한 채 지눠산의 안개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