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업

삼성전자 임금협상 사후조정 결렬…총파업 긴장감 고조

삼성전자 노사가 2026년 임금협약 체결을 위한 사후조정에서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노사 갈등이 다시 중대 분수령을 맞았다. 성과급 제도 개편을 둘러싼 입장 차가 끝내 좁혀지지 않으면서, 노조가 예고한 총파업 가능성도 한층 커졌다.

 

삼성전자 노사와 중앙노동위원회는 12일 오전 10시부터 13일 새벽 3시까지 정부세종청사에서 2차 사후조정 회의를 진행했다. 전날 1차 회의가 11시간 넘게 이어진 데 이어 이날도 17시간가량 논의가 계속됐지만 최종 합의에는 실패했다.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는 회의 종료 직후 사후조정 최종 결렬을 선언했다. 최승호 지부장은 “노사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조정안을 요청했지만, 제시된 내용은 오히려 후퇴한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핵심 쟁점이던 성과급 제도와 관련해 “성과급 투명화가 아니라 기존 OPI 제도를 유지하는 내용이었고, 성과급 상한 50%도 그대로였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그동안 초과이익성과금 제도의 산정 기준을 명확히 하고, 성과급 상한을 폐지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반면 사측은 기존 제도의 큰 틀을 유지하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의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중노위의 두 차례 중재 시도도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

 

사후조정은 조정 절차가 끝난 뒤에도 노사 동의에 따라 분쟁 해결을 위해 다시 진행하는 제도다. 중앙노동위원회가 중재 역할을 맡고, 조정안이 마련돼 노사가 수용하면 단체협약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그러나 이번에는 노조가 조정 중단을 요청하면서 별도 조정안 없이 절차가 종료됐다.

 

중노위는 “노사 양측의 주장을 바탕으로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며 협의를 지원했지만, 양측의 간극이 컸다”고 밝혔다. 다만 노사 모두가 원할 경우 추가 사후조정은 언제든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남겼다.

 

노조는 오는 21일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최 지부장은 총파업 참여 의사를 밝힌 조합원이 4만1000명에 이른다며, 사측 태도에 따라 참여 인원이 5만명을 넘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위법한 쟁의행위를 할 생각은 없다”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 쟁의를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실제 총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생산 차질과 공급망 불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반도체 업황 회복 국면에서 파업이 장기화되면 고객 이탈과 납기 지연 등 중장기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피해 규모가 수십조원대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 때문에 정부가 긴급조정권을 검토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긴급조정권은 쟁의행위가 국민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을 때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동할 수 있는 예외적 제도다. 발동되면 30일간 쟁의행위가 금지되고 중노위 조정·중재 절차가 진행된다.

 

다만 중노위는 긴급조정권 검토는 소관 사항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노사 모두 물러서지 않는 가운데, 삼성전자 임금협상은 총파업 여부를 가를 막판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정약용의 500권 저술 산실, 다산초당의 인문학

는 결과가 아니라, 발길 닿는 구간마다 깃든 땅의 역사와 대화하며 천천히 걷는 과정에 있다. 그중에서도 전남 강진을 지나는 남파랑길 83코스는 조선의 대유학자 다산 정약용의 고립과 깊은 사유가 층층이 쌓인 공간으로 여행자들을 이끈다. 약 17.5km에 달하는 이 길의 중심에는 야생 차나무가 무성해 '다산'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만덕산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강진 유배 시절 다산의 삶은 만덕산 자락의 백련사와 그곳에서 만난 혜장선사와의 인연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1805년 봄, 유배객 신분으로 처음 백련사를 찾은 정약용은 주지였던 혜장과 학문적 깊이에 감복하며 신분을 초월한 우정을 쌓기 시작했다. 절망적인 유배 생활 속에서 혜장은 다산에게 지적인 동반자이자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1808년 다산이 백련사 인근의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긴 후 두 사람이 수시로 오갔던 800m의 산길은 오늘날 '우정길'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도보 여행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한다.다산초당은 단청조차 없는 소박한 목조 건물이지만, 그곳에 머문 11년 동안 정약용은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등 5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유배라는 물리적 억압조차 그의 사유의 깊이를 가둘 수 없었음을 증명하듯, 초당 곳곳에는 선비의 여유와 기품이 흐른다. 만덕산 능선에서 내려다보이는 강진만의 풍경은 고독한 유배객의 시선을 넓혀주었을 것이며, 지천에 널린 야생 차나무는 그의 호가 된 '다산'의 유래가 되어 오늘날까지 그 향기를 전하고 있다.강진을 지나 해남으로 발길을 옮기면 달마산 미황사에서 땅끝탑으로 이어지는 남파랑길 90코스가 여행자를 맞이한다. 이 구간의 하이라이트는 기암괴석 사이에 제비집처럼 자리 잡은 도솔암이다.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어 400여 년간 빈터로 남아있던 이곳은 2002년 법조 스님의 원력으로 복원되었다. 헬기조차 접근하기 힘든 험지에 암자를 세우기 위해 산 아래에서 자재를 미리 깎고 단청까지 칠해 올라와 조립한 '사전 제작 방식'의 서사는 수행자의 지독한 정진을 짐작하게 한다.한 칸 남짓한 작은 규모의 도솔암은 거대한 바위 성벽에 둘러싸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은 남해의 일출과 서해의 낙조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천혜의 명당으로, 암자 앞마당에 서면 탁 트인 바다와 달마산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무가 밀려오는 날이면 마치 구름바다 위에 떠 있는 신선의 거처와 같은 풍경을 연출하며 보는 이의 넋을 잃게 만든다. 작은 공간 안에 고요와 수행의 서사를 압축해 놓은 도량의 품격은 길 위에서 지친 여행자의 마음을 정화해 주기에 충분하다.코리아둘레길 남도 구간은 이처럼 유학자의 고뇌와 수행자의 원력이 교차하는 인문학적 성지다. 길은 단순히 흙과 돌로 이루어진 통로가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인물들이 남긴 사유의 흔적을 따라 걷는 시간 여행의 통로가 된다. 완주라는 목표에 매몰되지 않고 발걸음을 늦출 때 비로소 보이는 풍경들은 우리 국토가 간직한 깊은 서사를 들려준다. 만덕산의 차 향기와 달마산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 이 여정은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휴식과 성찰의 의미가 무엇인지 묵묵히 웅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