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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진·고아성의 첫 연극 도전, '바냐 삼촌' 예매율 1위 돌풍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의 정수가 담긴 연극 '바냐 삼촌'이 LG아트센터 무대 위에서 현대적인 생명력을 얻어 다시 태어났다. 이번 공연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종횡무진하던 배우 이서진과 고아성이 연극 무대에 처음으로 데뷔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개막 전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100년이 넘는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 곁으로 찾아온 이 고전은, 평범한 인간들이 겪는 허무와 분노, 그리고 그 끝에 남는 가느다란 희망을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로 그려내며 관객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주인공 바냐 역을 맡은 이서진은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고전이 지닌 시대를 관통하는 힘을 절감했다고 밝혔다. 그는 연습 과정에서 대본 속 인물들이 마치 자신의 주변에 실존하는 사람들처럼 느껴질 정도로 현실적이었다고 고백했다. 특히 바냐의 삶이 자신의 실제 모습과 닮아있다고 느낀 그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결국 똑같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며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처음 서는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삶의 권태와 허탈함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며 바냐라는 인물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혔다.

 


소냐 역의 고아성 역시 체호프 작품이 지닌 난해함을 극복하기 위해 치열한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 극적인 사건보다는 인물 간의 미묘한 관계와 감정의 흐름이 중요한 체호프 연극의 특성상, 그는 사소한 눈빛 하나에도 의미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연출가와의 토론을 통해 소냐라는 캐릭터를 당초 생각했던 성숙한 여인에서 안절부절못하면서도 활기 넘치는 소녀로 구체화했다는 그는, 무대 위에서 뿜어내는 에너지를 통해 극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두 배우는 이번 공연을 준비하며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고 입을 모았다. 연습실에서 매일같이 이어지는 의견 교환과 집에 돌아가서도 멈추지 않는 고민은, 베테랑 배우들에게도 연기에 대한 초심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연극 '바냐 삼촌'이 희극인지 비극인지에 대한 논쟁은 공연이 시작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배우들은 비극이라 생각하며 연기하지만, 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관객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삶의 아이러니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이번 LG아트센터 공연의 백미는 극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소냐의 위로 장면이다. 원작의 차가운 느낌 대신 손상규 연출은 '다정함'이라는 키워드를 가미해 각색했다. 고아성이 연기하는 소냐는 삶의 무게에 짓눌린 삼촌 바냐에게 담담하면서도 따뜻한 위로를 건네며,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다시 일상을 살아내야 할 이유를 전한다. 이 다정한 위로는 이서진의 눈물을 자아낼 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게도 깊은 공감과 치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서진은 소냐의 대사처럼 괴로운 순간이 찾아와도 결국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젊은 세대인 소냐가 건네는 위로가 낯간지럽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힘이 된다는 그의 말은, 세대를 초월한 소통과 연대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100년 전 러시아 시골 영지에서 울려 퍼졌던 위로의 목소리는, 오늘날 서울의 무대 위에서 이서진과 고아성의 목소리를 빌려 지친 현대인들의 마음을 다독이며 성황리에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벽화마을 원조 동피랑부터 해저터널까지, 통영 골목길 탐방

0여 년 전 학익진으로 왜군을 섬멸했던 격전의 현장이지만, 지금은 가두리 양식장 부표가 점점이 떠 있는 평화로운 바다로 변모했다. 섬 입구의 거북등대를 지나 제승당에 들어서면 삼도수군통제사로서 작전을 지휘하던 장군의 고뇌가 느껴진다. 특히 바다 건너 과녁을 향해 활을 쏘던 한산정은 밀물과 썰물의 차이를 전술에 활용하려 했던 장군의 치밀한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장소다.통영이라는 지명 자체가 '삼도수군통제영'의 줄임말에서 유래했을 만큼, 이 도시는 조선 수군의 총사령부로서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604년 현재의 통영항 일대로 본영을 옮긴 통제영은 군사적 요충지를 넘어 나전칠기 등 공예 생산의 중심지로서 지역 경제와 문화를 꽃피웠다. 비록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많은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본관이었던 세병관은 여전히 웅장한 자태로 남아 통영의 뿌리를 증명한다. 통제영의 역사는 통영이 단순한 항구 도시를 넘어 문화적 자부심이 강한 도시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다.자연이 빚어낸 한려수도의 비경은 미륵산 정상에서 그 정점을 찍는다. 케이블카를 이용해 손쉽게 오를 수 있는 이곳은 국립공원 100경 중 으뜸으로 꼽히며, 맑은 날에는 지리산 천왕봉과 일본 대마도까지 조망할 수 있는 탁 트인 시야를 제공한다. 전망대 근처의 '귀신 잡는 해병' 표지판은 6.25 전쟁 당시 통영상륙작전의 승전보를 전하던 종군기자의 문구에서 유래했다는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을 전한다. 산 아래로 펼쳐진 섬들의 군무는 왜 이곳이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지 단번에 납득하게 만든다.통영의 골목길은 예술가들의 영감으로 가득 차 있다. 동쪽 비탈 마을인 동피랑은 철거 위기를 딛고 벽화 마을로 거듭나며 전국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고, 서쪽의 서피랑은 유치환과 김춘수 등 문학인들의 감성을 담은 소박한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통영반도와 미륵도를 잇는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은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와 토목 기술이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이다. 바다 밑 13m 아래를 걷다 보면 머리 위로 지나가는 배의 진동이 느껴지는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으며, 이는 통영만이 가진 입체적인 매력을 더해준다.예술의 향기는 시내 곳곳에서 파도처럼 밀려온다. 현대 음악의 거장 윤이상과 소설 '토지'의 박경리, '꽃'의 시인 김춘수 등 한국 예술사의 거성들이 모두 통영 출신이다. 특히 화가 이중섭은 피란 시절 통영에서 2년간 머물며 '황소'와 '흰소' 등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는데, 이 시기는 그의 예술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르네상스로 평가받는다. 매년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와 박경리 기념관, 윤이상 기념관 등은 통영이 왜 '예술가를 낳는 땅'이라 불리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보여주는 문화적 자산들이다.통영 여행의 완성은 오감을 자극하는 미식에 있다. 봄철의 별미인 도다리쑥국은 해풍을 맞고 자란 쑥과 자연산 도다리가 만나 비린 맛 없이 향긋하고 시원한 국물 맛을 자랑한다. 통영 특유의 술 문화인 '다찌'는 정해진 메뉴 없이 그날의 제철 해산물이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지는 풍성함의 극치다. 여기에 멍게비빔밥과 충무김밥, 달콤한 꿀빵까지 더해지면 통영의 맛을 온전히 느꼈다고 할 수 있다. 호국과 예술, 그리고 미식이 어우러진 통영의 봄은 이 계절이 다 가기 전에 반드시 경험해야 할 축복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