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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 원 경기장에서 강등? 토트넘 벼랑 끝 생존 싸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구단 토트넘 홋스퍼가 창단 이래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다. 리그 종료를 단 2경기 앞둔 시점에서 강등권과의 격차가 단 2점에 불과한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든 것이다. 1992년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단 한 차례도 하부 리그로 떨어지지 않았던 구단의 자부심은 이제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절박함으로 바뀌었다. 한때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진출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던 팀의 몰락에 전 세계 축구계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지난 9월 지휘봉을 내려놓은 다니엘 레비 전 회장이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영국 윈저성에서 열린 훈장 수여식에 참석한 그는 현재 구단이 처한 상황에 대해 깊은 상실감을 토로했다. 그는 자신이 재임하던 24년 동안 팀이 강등권 싸움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는 단 1초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현재의 순위표를 보며 느끼는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허함뿐이라고 밝혔다.

 


레비 전 회장은 특히 구단의 명운을 걸고 추진했던 신축 경기장 건설 당시를 회상하며 아쉬움을 더했다. 약 2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해 세계 최고의 인프라를 구축할 때만 해도, 토트넘의 미래는 오직 유럽 정상만을 향해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강등이라는 단어 자체가 구단 내부에서 고려 대상조차 아니었음을 강조한 그는, 화려한 경기장 외형과 대비되는 현재의 초라한 성적에 대해 참담한 심경을 숨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비는 구단에 대한 변함없는 애착을 과시하며 잔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비록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토트넘은 여전히 자신의 정체성과 같다고 언급한 그는, 남은 경기에서 선수들이 저력을 발휘해 프리미어리그에 살아남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또한 행사장에서 만난 윌리엄 왕세자 역시 토트넘의 행운을 빌어주었다는 일화를 전하며, 구단이 지역 사회에 기여한 공로만큼은 팬들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팬들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레비 전 회장이 재임 기간 동안 재정적 성장과 현대적인 인프라 구축에는 성공했을지언정, 정작 축구 구단의 본질인 우승 트로피와 경기력 유지에는 소홀했다는 비판이 거세기 때문이다. 사업가적인 마인드로 구단을 운영하며 실질적인 성과보다 수익 창출에만 몰두했던 과거의 선택들이 결국 현재의 성적 부진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제 토트넘에게 남은 기회는 단 두 번의 경기뿐이다. 프리미어리그 최장수 회장으로서 영광과 오욕을 함께했던 레비의 퇴장 이후, 구단은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수조 원짜리 경기장에서 하부 리그 경기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북런던을 휘감고 있는 가운데, 토트넘이 이 역사적인 재앙을 피하고 명가의 자존심을 지켜낼 수 있을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윈난 지눠산, 300년 탄압 딛고 부활

기술을 통해 독자적인 공동체 문화를 유지해 왔다. 특히 지눠산은 과거 청나라 시절부터 보이차의 핵심 산지로 명성을 떨쳤으며, 이곳에서 생산되는 찻잎은 그 품질과 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영광은 오히려 외부 세력의 질시를 불러일으켰고, 지눠족은 오랜 시간 동안 혹독한 수난의 역사를 감내해야 했다.지눠족의 기원에는 삼국시대 제갈공명과 관련된 흥미로운 전설이 서려 있다. 남만 정벌 당시 대열에서 이탈한 촉나라 병사들이 현지 토착민과 결합하여 형성된 민족이라는 설이다. 이 때문에 지눠족은 제갈공명을 단순한 정복자가 아닌 차 씨앗을 전해준 '차의 조상'으로 숭배하며 매년 차조회를 열어 경의를 표한다. 외부인을 배척하기보다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여 민족의 번영을 꾀했던 이들의 개방적인 태도는 씨족 내 혼인을 엄격히 금지하고 외지인과의 결합을 장려했던 독특한 혼인 풍습에서도 잘 드러난다.이들이 보유한 차 제조 기술은 현대 차 문화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찻잎을 숯불에 구워 우려내는 '화소차'는 일본의 유명한 호지차보다 훨씬 앞선 전통을 자랑하며, 고온 로스팅을 통해 카페인 부담을 낮춘 것이 특징이다. 또한 찻잎을 달여 고체 형태로 만든 '차고'는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차로 평가받을 만큼 혁신적인 기술력을 보여준다. 찻잎을 나물처럼 무쳐 먹는 '량반차' 습속은 차를 단순한 음료가 아닌 생존을 위한 식량으로 활용했던 소수민족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그러나 지눠족의 차 산업은 청나라의 가혹한 통치 아래 철저히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다. 18세기 한족 상인과의 갈등을 빌미로 시작된 청나라의 보복은 마을과 다원을 잿더미로 만들었고, 이후 약 177년 동안 지눠족의 독자적인 차 생산은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딴 찻잎을 인근 지역인 이우나 이방으로 보내야만 했으며, 그 과정에서 지눠산의 명성은 점차 퇴색되었다. 20세기 들어서도 전쟁과 내전의 화마를 피하지 못한 채 고귀한 차산은 화전민들의 터전으로 변하며 그 규모가 급격히 축소되었다.몰락의 길을 걷던 지눠족에게 반전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20세기 말 보이차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밀림 속에 방치되었던 수백 년 수령의 고차수들이 다시 발견되었고, 여기서 생산된 고수차가 시장에서 천문학적인 가격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300년 넘게 이어온 탄압과 빈곤의 사슬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지눠족은 자신들의 녹색 보물인 차나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경제적 자립을 꾀했고, 그 결과 2019년 윈난성 소수민족 중 가장 먼저 완전한 빈곤 퇴치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현재 지눠산은 사통팔달의 도로망이 구축되어 외부와의 소통이 원활해졌으며, 아열대 기후의 이점을 살린 차 재배는 여전히 이들의 주된 수입원이다. 지눠족은 제갈공명의 탄생일에 풍등을 올리며 조상을 기리는 전통을 이어가는 동시에, 현대적인 차 가공 기술을 접목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과거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지눠족은 이제 윈난성을 대표하는 차 생산지로서의 위상을 회복하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토템 신앙과 문화를 보존한 채 지눠산의 안개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