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슈

우아함 대신 야수성… 마요 감독이 뒤집은 고전의 틀

 고전 동화의 순수함을 기대한 관객들에게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는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배신을 선사했다. 지난 16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은 선과 악의 이분법을 지우고 그 자리에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과 트라우마를 채워 넣었다. 장 크리스토프 마요 예술감독은 익숙한 백조 이야기를 왕가 내부의 불륜과 복수, 통제와 일탈이 뒤섞인 현대적 심리극으로 탈바꿈시켰다. 무대 위에는 우아한 공주 대신 본능에 충실한 인간 군상이 등장해 120분간 관객의 시선을 압도했다.

 

이번 공연의 가장 큰 파격은 인물 관계의 재설정이다. 악마인 '밤의 여왕'은 단순히 왕자를 방해하는 존재가 아니라, 왕과 은밀한 불륜 관계를 맺어온 인물로 묘사된다. 왕가로부터 존재를 부정당한 여왕의 원한은 극 전체를 관통하는 복수의 동력이 된다. 이에 맞서는 왕비 역시 인자한 어머니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아들을 강박적으로 통제하며 끝내 흑조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광기를 보여준다. 고전의 전형성을 탈피한 이러한 설정은 관객들로 하여금 인간 본성의 모호함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든다.

 


마요 감독은 무용수들에게 전형적인 발레 연기가 아닌 '살아 있는 안무'를 주문했다. 이에 따라 무용수들은 정교한 테크닉을 넘어 노골적이고 관능적인 몸짓으로 캐릭터의 내면을 표현했다. 특히 왕자를 유혹하는 흑조와 궁중 여인들의 모습은 방탕하고 도발적이며, 신체적 접촉을 서슴지 않는 연출을 통해 왕자가 느끼는 혼란과 욕망을 시각화했다. 왕과 왕비 또한 아들을 위협하듯 압도하는 동작을 선보이며, 권력과 통제가 지배하는 왕실의 서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작품의 중심에는 '마요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한국인 수석무용수 안재용이 있었다. 왕자 역을 맡은 그는 섬세한 표정 변화와 고갯짓 하나만으로도 캐릭터가 느끼는 절박함과 환희를 객석 끝까지 전달했다. 안재용은 동작의 강약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첫사랑을 향한 순수함과 흑조의 유혹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적인 왕자의 모습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그의 열연은 현대 발레가 지향하는 서사적 깊이를 더하며 관객들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시각적인 연출 역시 절제의 미학을 극대화했다. 화려한 중세 궁전 대신 단순화된 기하학적 구조물이 무대를 채웠고, 의상은 백조의 '야수성'을 부각하는 데 집중했다. 발레리나의 상징인 튀튀 대신 거친 깃털이 달린 짧은 원피스와 조류의 발톱을 연상시키는 긴 장갑을 사용해, 천상의 존재가 아닌 야생 동물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이러한 미니멀리즘적 접근은 인물들의 감정선에 더욱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를 거두며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이번 내한 공연은 우리가 믿고 싶어 하는 인간의 이성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며 막을 내렸다. 제작진은 인간 역시 길을 잃은 존재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고전의 권위에 도전했다. 화성과 서울을 거치며 뜨거운 반향을 일으킨 이번 무대는 오는 20일 대전 공연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현대 발레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번 '백조의 호수'는 한국 관객들에게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강렬한 잔상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폭염도 못 막은 노란 물결… 성주 참외 축제 흥행 성공

광객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 17일 모든 일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번 축제는 성주의 자랑인 세계적 특산물 참외와 세종대왕자 태실이 간직한 생명 문화를 하나로 묶어낸 융합형 콘텐츠를 선보였다. 성주군은 축제 기간 동안 약 24만 명의 방문객이 현장을 찾은 것으로 집계했으며, 이는 이른 무더위라는 변수 속에서도 지역 대표 축제로서의 저력을 입증한 수치다.축제의 중심지인 성밖숲은 단순한 행사장을 넘어 생명의 가치를 시각화한 테마 공간으로 변모했다. '생명 테마광장'에는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주제관과 참외를 활용한 힐링 공원이 조성되어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특히 성주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한 편의 영화처럼 구성한 '시네마틱 아카이브 갤러리'는 지역의 정체성을 세련된 방식으로 전달하며 호평을 받았다. 방문객들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에서 성주만이 가진 독특한 문화적 자산을 몸소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한 맞춤형 에듀테인먼트 콘텐츠는 이번 축제의 흥행을 이끈 핵심 동력이었다. 이천변 너머에 마련된 '씨앗 아일랜드'에서는 어린이들이 생명의 근원인 씨앗을 탐구하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영유아를 위한 '베이비 올림픽'과 수상 자전거 체험, 참외 낚시 등은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했다. 참외 라운지에서 열린 반짝 경매와 시식 코너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큰 인기를 끌며 성주 참외의 우수성을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대규모 퍼포먼스 역시 축제의 품격을 높였다. 첫날 펼쳐진 '세종 대왕자 태실 태봉안 행렬'은 조선 왕실의 장엄한 의례를 재현하며 성주읍 시가지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둘째 날 개막식에는 백지영, 다이나믹 듀오 등 정상급 가수들이 출연해 축제의 열기를 더했으며, 셋째 날 밤에는 이천변을 배경으로 펼쳐진 '생명의 낙화놀이'가 장관을 연출했다. 불꽃이 강물 위로 흩어지는 환상적인 풍경은 올해 처음 도입된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장면으로 꼽혔다.축제 마지막 날인 17일에는 지역민과 관광객이 하나 되는 화합의 장이 마련됐다. 오후부터 열린 '참외 가요제'는 참가자들의 숨겨진 끼와 열정으로 무대를 달궜으며, 성주의 전통 민속놀이인 '별뫼 줄다리기'가 대미를 장식하며 축제의 마침표를 찍었다. 성주군은 지난해보다 다소 높아진 기온 탓에 방문객 수가 예상치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콘텐츠의 질적 측면에서는 경북도 지정 우수축제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자체 평가를 내놓았다.나흘간의 대장정을 마친 성주 참외&생명 문화축제는 단순한 지역 특산물 홍보를 넘어 생명 존중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전파하는 문화의 장으로 거듭났다. 성주군은 이번 축제의 성공을 발판 삼아 참외 브랜드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세종대왕자 태실을 중심으로 한 생명 문화 콘텐츠를 세계적인 관광 자원으로 육성해 나갈 방침이다. 뜨거운 햇살 아래 노랗게 익은 참외처럼 풍성한 결실을 본 이번 축제는 내년을 기약하며 성주의 밤하늘 아래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