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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빈, 이종범 넘는 1,798안타 정조준

 KIA 타이거즈가 타선의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할 '2번 타자' 부재로 깊은 고민에 빠졌다. 현재 KIA 타선은 1번 박재현과 3번 김도영이 제 몫을 다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해줄 적임자가 나타나지 않아 득점권 기회를 무산시키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이범호 감독은 경기 상황에 따라 다양한 선수들을 2번 자리에 시험 가동하고 있지만, 다른 타순에서 맹활약하던 선수들조차 2번만 가면 침묵하는 기현상이 반복되면서 '2번 타자 잔혹사'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이범호 감독이 꺼내 든 카드는 베테랑 내야수 김선빈이다. 사실 김선빈의 2번 전진 배치는 이 감독이 가장 아껴왔던 선택지 중 하나다. 30대 중후반에 접어든 김선빈의 체력 부담을 고려할 때, 타석 기회가 많고 베이스러닝 소모가 큰 2번 타순은 베테랑에게 가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팀 타선의 응집력이 떨어지는 비상 상황에서 이 감독은 결국 김선빈의 정교한 타격과 풍부한 경험에 기대를 걸기로 했다.

 


김선빈 본인 역시 팀의 위기를 직감하고 부진 탈출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평소 꾸준한 성적을 유지해온 베테랑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타격감이 떨어지자 스스로 특별 타격 훈련을 자청하며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이 감독은 김선빈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라며 그의 투혼을 높게 평가했다. 특히 상대 선발과의 상대 전적이나 작전 수행 능력 면에서 김선빈이 2번 타순의 공백을 메워줄 최적의 인물이라는 판단이 이번 결정의 배경이 되었다.

 

체력 안배와 전진 배치 사이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KIA 벤치는 유연한 선수 기용을 예고했다. 김선빈을 2번으로 기용하되, 체력 소모가 심한 날에는 지명타자로 출전시키거나 휴식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관리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최근 유망주 내야수 윤도현을 1군 엔트리에 등록하며 김선빈의 수비 부담을 덜어줄 준비도 마쳤다. 고참 선수가 체력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빠지겠다는 말 없이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모습은 팀 전체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개인 기록 측면에서도 김선빈은 타이거즈 역사에 남을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현재 통산 1,784안타를 기록 중인 그는 타이거즈 프랜차이즈 역대 최다 안타 기록 보유자인 이종범의 1,797안타에 단 14개만을 남겨두고 있다. 19년 동안 타이거즈 유니폼만을 입고 뛴 전설의 기록을 넘어서는 것은 김선빈 개인에게나 팀에게나 기념비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비록 최근 타율이 다소 하락했지만, 출루율이 여전히 견고하고 운이 따르지 않았던 타구들이 안타로 연결되기 시작한다면 기록 경신은 시간문제다.

 

KIA의 이번 승부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김선빈이 2번 타순에서 특유의 정확성을 되찾는 것이 급선무다. 이범호 감독의 두터운 신뢰 속에서 김선빈이 체력적 한계를 극복하고 타선의 혈을 뚫어준다면, KIA는 다시 한번 상위권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프랜차이즈 역대 최다 안타라는 대기록을 향해 달려가는 김선빈의 방망이가 팀의 고민인 2번 타자 잔혹사를 끊어내고 타이거즈의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지 야구팬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윈난 지눠산, 300년 탄압 딛고 부활

기술을 통해 독자적인 공동체 문화를 유지해 왔다. 특히 지눠산은 과거 청나라 시절부터 보이차의 핵심 산지로 명성을 떨쳤으며, 이곳에서 생산되는 찻잎은 그 품질과 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영광은 오히려 외부 세력의 질시를 불러일으켰고, 지눠족은 오랜 시간 동안 혹독한 수난의 역사를 감내해야 했다.지눠족의 기원에는 삼국시대 제갈공명과 관련된 흥미로운 전설이 서려 있다. 남만 정벌 당시 대열에서 이탈한 촉나라 병사들이 현지 토착민과 결합하여 형성된 민족이라는 설이다. 이 때문에 지눠족은 제갈공명을 단순한 정복자가 아닌 차 씨앗을 전해준 '차의 조상'으로 숭배하며 매년 차조회를 열어 경의를 표한다. 외부인을 배척하기보다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여 민족의 번영을 꾀했던 이들의 개방적인 태도는 씨족 내 혼인을 엄격히 금지하고 외지인과의 결합을 장려했던 독특한 혼인 풍습에서도 잘 드러난다.이들이 보유한 차 제조 기술은 현대 차 문화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찻잎을 숯불에 구워 우려내는 '화소차'는 일본의 유명한 호지차보다 훨씬 앞선 전통을 자랑하며, 고온 로스팅을 통해 카페인 부담을 낮춘 것이 특징이다. 또한 찻잎을 달여 고체 형태로 만든 '차고'는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차로 평가받을 만큼 혁신적인 기술력을 보여준다. 찻잎을 나물처럼 무쳐 먹는 '량반차' 습속은 차를 단순한 음료가 아닌 생존을 위한 식량으로 활용했던 소수민족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그러나 지눠족의 차 산업은 청나라의 가혹한 통치 아래 철저히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다. 18세기 한족 상인과의 갈등을 빌미로 시작된 청나라의 보복은 마을과 다원을 잿더미로 만들었고, 이후 약 177년 동안 지눠족의 독자적인 차 생산은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딴 찻잎을 인근 지역인 이우나 이방으로 보내야만 했으며, 그 과정에서 지눠산의 명성은 점차 퇴색되었다. 20세기 들어서도 전쟁과 내전의 화마를 피하지 못한 채 고귀한 차산은 화전민들의 터전으로 변하며 그 규모가 급격히 축소되었다.몰락의 길을 걷던 지눠족에게 반전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20세기 말 보이차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밀림 속에 방치되었던 수백 년 수령의 고차수들이 다시 발견되었고, 여기서 생산된 고수차가 시장에서 천문학적인 가격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300년 넘게 이어온 탄압과 빈곤의 사슬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지눠족은 자신들의 녹색 보물인 차나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경제적 자립을 꾀했고, 그 결과 2019년 윈난성 소수민족 중 가장 먼저 완전한 빈곤 퇴치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현재 지눠산은 사통팔달의 도로망이 구축되어 외부와의 소통이 원활해졌으며, 아열대 기후의 이점을 살린 차 재배는 여전히 이들의 주된 수입원이다. 지눠족은 제갈공명의 탄생일에 풍등을 올리며 조상을 기리는 전통을 이어가는 동시에, 현대적인 차 가공 기술을 접목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과거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지눠족은 이제 윈난성을 대표하는 차 생산지로서의 위상을 회복하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토템 신앙과 문화를 보존한 채 지눠산의 안개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