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업

삼성 초기업노조, 2달 만에 과반 상실

 삼성전자 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초기업노동조합이 임금교섭 타결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과반 노조 지위를 상실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초기업노조의 전체 조합원 수는 이날 오후 기준 5만 8천여 명으로 집계되어, 전체 임직원의 절반인 6만 4천여 명 선을 밑돌게 됐다. 지난 4월 고용노동부로부터 법적 근로자 대표 지위를 획득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대표성이 급격히 약화한 것이다. 한때 7만 6천 명을 상회하던 세력이 보름 남짓한 기간에 2만 명 가까이 빠져나간 결과다.

 

이번 대규모 이탈 사태의 도화선은 사업부별로 극명하게 갈린 성과급 규모였다. 올해 역대급 실적을 기록한 메모리 사업부 직원의 경우 특별성과급이 6억 원에 육박하는 반면, 적자를 기록 중인 시스템LSI와 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부문은 그 3분의 1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고됐다. 같은 반도체 부문 내에서도 소속 사업부에 따라 수억 원의 자산 격차가 발생하자, 비메모리 사업부 직원들은 초기업노조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며 등을 돌렸다.

 


완제품을 담당하는 디바이스경험 부문의 반발은 더욱 거세다. 이들은 반도체 부문의 파격적인 현금 보상과 달리 1인당 600만 원 상당의 자사주 지급에 그치자 집단적인 허탈감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DX 부문 소속 조합원들은 노태문 부문장과의 직접 면담을 요구하며 기존 노조를 탈퇴해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나 동행노조로 대거 자리를 옮겼다. 초기업노조의 빈자리를 틈타 전삼노와 동행노조의 세력은 단기간에 수배 이상 팽창하며 새로운 세력 균형을 형성하고 있다.

 

초기업노조에서 빠져나온 조합원들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제2, 제3의 노조로 흩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전삼노는 보름 만에 조합원이 5천 명 가까이 늘어 2만 명 선을 돌파했고, 동행노조는 한 달 전보다 10배 가까이 폭증하며 2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단일 대오를 형성했던 삼성전자 노조 지형이 다시 다당제 형태의 경쟁 구도로 재편되었음을 의미한다. 조합원들은 이제 노조의 이름보다 자신들의 실질적인 보상을 누가 더 확실히 챙겨줄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선택을 내리고 있다.

 


과반 지위 상실은 초기업노조의 대회사 협상력에 치명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과반 노조로서 노사협의회 위원을 직접 지명하며 경영진을 압박해왔던 권한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제 초기업노조는 독자적인 결정권을 잃고 타 노조들과의 복잡한 공조 절차를 거쳐야만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게 됐다. 특히 2027년까지 교섭대표권을 가진 전삼노와의 주도권 싸움이 격화될 경우, 내년도 임금 및 단체협상은 올해보다 훨씬 험난한 과정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 노사 관계는 이제 '노사 갈등'을 넘어 '노노 갈등'이라는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했다. 초기업노조 위원장은 조직 재정비를 위해 집행부 분리와 재신임 투표라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이미 갈라진 사업부 간의 감정의 골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직군별로 상이한 보상 체계와 이에 따른 구성원들의 불만이 노조의 세력 판도를 수시로 뒤흔드는 변동성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삼성전자의 노사 안정화는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운 과제가 됐다.

 

 

 

윈난 지눠산, 300년 탄압 딛고 부활

기술을 통해 독자적인 공동체 문화를 유지해 왔다. 특히 지눠산은 과거 청나라 시절부터 보이차의 핵심 산지로 명성을 떨쳤으며, 이곳에서 생산되는 찻잎은 그 품질과 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영광은 오히려 외부 세력의 질시를 불러일으켰고, 지눠족은 오랜 시간 동안 혹독한 수난의 역사를 감내해야 했다.지눠족의 기원에는 삼국시대 제갈공명과 관련된 흥미로운 전설이 서려 있다. 남만 정벌 당시 대열에서 이탈한 촉나라 병사들이 현지 토착민과 결합하여 형성된 민족이라는 설이다. 이 때문에 지눠족은 제갈공명을 단순한 정복자가 아닌 차 씨앗을 전해준 '차의 조상'으로 숭배하며 매년 차조회를 열어 경의를 표한다. 외부인을 배척하기보다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여 민족의 번영을 꾀했던 이들의 개방적인 태도는 씨족 내 혼인을 엄격히 금지하고 외지인과의 결합을 장려했던 독특한 혼인 풍습에서도 잘 드러난다.이들이 보유한 차 제조 기술은 현대 차 문화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찻잎을 숯불에 구워 우려내는 '화소차'는 일본의 유명한 호지차보다 훨씬 앞선 전통을 자랑하며, 고온 로스팅을 통해 카페인 부담을 낮춘 것이 특징이다. 또한 찻잎을 달여 고체 형태로 만든 '차고'는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차로 평가받을 만큼 혁신적인 기술력을 보여준다. 찻잎을 나물처럼 무쳐 먹는 '량반차' 습속은 차를 단순한 음료가 아닌 생존을 위한 식량으로 활용했던 소수민족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그러나 지눠족의 차 산업은 청나라의 가혹한 통치 아래 철저히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다. 18세기 한족 상인과의 갈등을 빌미로 시작된 청나라의 보복은 마을과 다원을 잿더미로 만들었고, 이후 약 177년 동안 지눠족의 독자적인 차 생산은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딴 찻잎을 인근 지역인 이우나 이방으로 보내야만 했으며, 그 과정에서 지눠산의 명성은 점차 퇴색되었다. 20세기 들어서도 전쟁과 내전의 화마를 피하지 못한 채 고귀한 차산은 화전민들의 터전으로 변하며 그 규모가 급격히 축소되었다.몰락의 길을 걷던 지눠족에게 반전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20세기 말 보이차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밀림 속에 방치되었던 수백 년 수령의 고차수들이 다시 발견되었고, 여기서 생산된 고수차가 시장에서 천문학적인 가격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300년 넘게 이어온 탄압과 빈곤의 사슬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지눠족은 자신들의 녹색 보물인 차나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경제적 자립을 꾀했고, 그 결과 2019년 윈난성 소수민족 중 가장 먼저 완전한 빈곤 퇴치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현재 지눠산은 사통팔달의 도로망이 구축되어 외부와의 소통이 원활해졌으며, 아열대 기후의 이점을 살린 차 재배는 여전히 이들의 주된 수입원이다. 지눠족은 제갈공명의 탄생일에 풍등을 올리며 조상을 기리는 전통을 이어가는 동시에, 현대적인 차 가공 기술을 접목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과거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지눠족은 이제 윈난성을 대표하는 차 생산지로서의 위상을 회복하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토템 신앙과 문화를 보존한 채 지눠산의 안개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