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재선거 요구'…잠실7동 투표소 7시간 넘게 봉쇄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 6·3 지방선거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가 지연된 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일부 시민들이 밤새 투표소 앞을 점거하며 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함 이송을 막았다.

 

4일 한 언론사에 따르면 따르면 보수 성향 유튜버와 시민 등 약 300명은 송파구 우성아파트 경로당에 설치된 잠실7동 제2투표소 입구를 7시간 넘게 둘러싸고 “부정선거”, “개표 중단”, “재선거”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의를 이어갔다. 이들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라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한 중대한 문제라며, 해당 투표함을 개표장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잠실7동 제2투표소는 이번 지방선거 과정에서 투표용지가 모두 소진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진 투표소 중 한 곳이다. 당시 선관위는 현장 혼란을 줄이기 위해 선거인명부 대조전표를 이미 받은 유권자에 한해 투표 마감 시간을 오후 10시까지 연장했다. 이후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는 전날 오후 11시 50분께 투표 종료를 공식 확인했지만, 시위대가 출입구를 막아서면서 투표함 2개를 개표장으로 옮기지 못했다.

 


서울시선관위는 당초 경찰 협조를 받아 투표함 반출을 시도하려 했으나, 현장에 모인 인파와 물리적 충돌 가능성을 고려해 강행하지 않기로 했다. 기동대가 한때 투표소 주변에 배치됐지만 오전 2시께 아파트 단지 밖으로 물러났고, 현재는 대기 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선관위는 오전 4시 27분께 입장문을 내고 “잠실7동 제2투표소 투표함 이송을 강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개표를 위해서는 결국 투표함을 개표장으로 옮겨야 하는 만큼, 이송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현장에는 국민의힘 김재섭·김은혜 의원 등도 찾아 선관위 측에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경위와 선관위의 대응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긴급 위원회를 열고 이번 사안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혔다. 선관위는 “공직선거법상 선거의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현재 진행 중인 개표를 중단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투표용지 부족으로 유권자와 현장 관계자들이 혼란을 겪은 점에 대해서는 경위를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번 사태로 해당 투표소의 투표함 이송이 지연되면서 송파구 개표 절차에도 일부 차질이 빚어졌다. 선관위는 경찰 및 관계기관과 협의해 안전을 확보한 뒤 투표함 이송과 개표 절차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정약용의 500권 저술 산실, 다산초당의 인문학

는 결과가 아니라, 발길 닿는 구간마다 깃든 땅의 역사와 대화하며 천천히 걷는 과정에 있다. 그중에서도 전남 강진을 지나는 남파랑길 83코스는 조선의 대유학자 다산 정약용의 고립과 깊은 사유가 층층이 쌓인 공간으로 여행자들을 이끈다. 약 17.5km에 달하는 이 길의 중심에는 야생 차나무가 무성해 '다산'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만덕산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강진 유배 시절 다산의 삶은 만덕산 자락의 백련사와 그곳에서 만난 혜장선사와의 인연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1805년 봄, 유배객 신분으로 처음 백련사를 찾은 정약용은 주지였던 혜장과 학문적 깊이에 감복하며 신분을 초월한 우정을 쌓기 시작했다. 절망적인 유배 생활 속에서 혜장은 다산에게 지적인 동반자이자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1808년 다산이 백련사 인근의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긴 후 두 사람이 수시로 오갔던 800m의 산길은 오늘날 '우정길'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도보 여행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한다.다산초당은 단청조차 없는 소박한 목조 건물이지만, 그곳에 머문 11년 동안 정약용은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등 5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유배라는 물리적 억압조차 그의 사유의 깊이를 가둘 수 없었음을 증명하듯, 초당 곳곳에는 선비의 여유와 기품이 흐른다. 만덕산 능선에서 내려다보이는 강진만의 풍경은 고독한 유배객의 시선을 넓혀주었을 것이며, 지천에 널린 야생 차나무는 그의 호가 된 '다산'의 유래가 되어 오늘날까지 그 향기를 전하고 있다.강진을 지나 해남으로 발길을 옮기면 달마산 미황사에서 땅끝탑으로 이어지는 남파랑길 90코스가 여행자를 맞이한다. 이 구간의 하이라이트는 기암괴석 사이에 제비집처럼 자리 잡은 도솔암이다.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어 400여 년간 빈터로 남아있던 이곳은 2002년 법조 스님의 원력으로 복원되었다. 헬기조차 접근하기 힘든 험지에 암자를 세우기 위해 산 아래에서 자재를 미리 깎고 단청까지 칠해 올라와 조립한 '사전 제작 방식'의 서사는 수행자의 지독한 정진을 짐작하게 한다.한 칸 남짓한 작은 규모의 도솔암은 거대한 바위 성벽에 둘러싸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은 남해의 일출과 서해의 낙조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천혜의 명당으로, 암자 앞마당에 서면 탁 트인 바다와 달마산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무가 밀려오는 날이면 마치 구름바다 위에 떠 있는 신선의 거처와 같은 풍경을 연출하며 보는 이의 넋을 잃게 만든다. 작은 공간 안에 고요와 수행의 서사를 압축해 놓은 도량의 품격은 길 위에서 지친 여행자의 마음을 정화해 주기에 충분하다.코리아둘레길 남도 구간은 이처럼 유학자의 고뇌와 수행자의 원력이 교차하는 인문학적 성지다. 길은 단순히 흙과 돌로 이루어진 통로가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인물들이 남긴 사유의 흔적을 따라 걷는 시간 여행의 통로가 된다. 완주라는 목표에 매몰되지 않고 발걸음을 늦출 때 비로소 보이는 풍경들은 우리 국토가 간직한 깊은 서사를 들려준다. 만덕산의 차 향기와 달마산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 이 여정은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휴식과 성찰의 의미가 무엇인지 묵묵히 웅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