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줄기세포 탈모 치료, 시술 3번 만에 모발 재생

 값비싼 비용을 들여 탈모 치료를 받아도 가시적인 효과를 얻지 못해 좌절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먹거나 바르는 약을 수년간 지속해도 모발 탈락이 멈추지 않거나, 고가의 모발이식을 원해도 두피 조건이 맞지 않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국내 연구진이 기존 치료법에 반응하지 않던 난치성 및 중증 탈모 환자들을 대상으로 줄기세포를 활용한 새로운 재생 치료 가능성을 입증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탯줄을 감싸고 있는 얇은 조직인 제대막에서 추출한 줄기세포 유래 물질 'PTT-6'에 있다. 제대막은 인체 세포 중 줄기세포 함유량이 가장 밀집된 조직으로, 화학적 손상 없이 순수하게 추출할 경우 조직 재생의 강력한 소재가 된다. PTT-6에는 세포 성장과 조직 복구를 돕는 단백질을 비롯해 손상된 부위를 재생시키는 다양한 성장인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연구팀은 이 성분이 두피의 미세 환경을 재조성하여 멈췄던 모발 재생 기능을 다시 깨울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아시아 비절개 모발이식학회 소속 김지석 원장 연구팀은 지난 1년 6개월 동안 500여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임상 시험을 진행했다. 임상 대상에는 일반적인 탈모 환자뿐만 아니라 항암 치료 후 발생한 난치성 탈모 환자 등 중증 사례들이 대거 포함되었다. 시험 결과, PTT-6 치료를 받은 환자의 70% 이상에서 육안으로 뚜렷하게 확인될 정도의 모발 회복 및 탈모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 이는 기존 치료에 실패했던 환자들에게도 재생 치료가 유효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고무적인 수치다.

 

특히 이번 임상 결과에서 주목할 점은 시술의 효율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는 사실이다. 통상적인 탈모 재생 치료가 2주 간격으로 최소 6회에서 12회 이상 반복적인 시술을 요구하는 것과 달리, PTT-6 활용 치료는 월 1회씩 단 3회 정도의 시술만으로도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효과를 거두었다. 이는 병원을 자주 방문해야 하는 환자들의 시간적 부담과 피로도를 대폭 낮춰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치료 횟수는 줄이면서 효과는 극대화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셈이다.

 


연구를 주도한 김 원장은 이번 성과가 단순히 새로운 물질을 발견한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정밀한 의료 장비와 결합해 치료 효율을 높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두피의 조직 재생 환경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는 접근 방식이 난치성 탈모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임상에 참여한 환자들 사이에서는 모발의 굵기 개선과 밀도 증가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게 나타났으며, 이는 학술대회 발표 당시에도 많은 전문의의 이목을 집중시킨 핵심 지표였다.

 

이번 연구 성과는 지난 5월 초 개최된 대한레이저피부모발학회 춘계 국제학술대회에서 공식 발표되며 그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재생 의학을 접목한 탈모 치료가 임상 현장에서 실질적인 데이터로 증명됨에 따라, 향후 모발이식의 대안이나 보완책으로서 줄기세포 치료의 비중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연구팀은 향후 더 넓은 범위의 환자군을 대상으로 추가 연구를 진행하여 치료의 안정성과 보편성을 확보해 나갈 계획이다. 줄기세포를 통한 모발 재생 기술은 현재 국내외 의료 시장에서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탈모 치료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약용의 500권 저술 산실, 다산초당의 인문학

는 결과가 아니라, 발길 닿는 구간마다 깃든 땅의 역사와 대화하며 천천히 걷는 과정에 있다. 그중에서도 전남 강진을 지나는 남파랑길 83코스는 조선의 대유학자 다산 정약용의 고립과 깊은 사유가 층층이 쌓인 공간으로 여행자들을 이끈다. 약 17.5km에 달하는 이 길의 중심에는 야생 차나무가 무성해 '다산'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만덕산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강진 유배 시절 다산의 삶은 만덕산 자락의 백련사와 그곳에서 만난 혜장선사와의 인연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1805년 봄, 유배객 신분으로 처음 백련사를 찾은 정약용은 주지였던 혜장과 학문적 깊이에 감복하며 신분을 초월한 우정을 쌓기 시작했다. 절망적인 유배 생활 속에서 혜장은 다산에게 지적인 동반자이자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1808년 다산이 백련사 인근의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긴 후 두 사람이 수시로 오갔던 800m의 산길은 오늘날 '우정길'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도보 여행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한다.다산초당은 단청조차 없는 소박한 목조 건물이지만, 그곳에 머문 11년 동안 정약용은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등 5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유배라는 물리적 억압조차 그의 사유의 깊이를 가둘 수 없었음을 증명하듯, 초당 곳곳에는 선비의 여유와 기품이 흐른다. 만덕산 능선에서 내려다보이는 강진만의 풍경은 고독한 유배객의 시선을 넓혀주었을 것이며, 지천에 널린 야생 차나무는 그의 호가 된 '다산'의 유래가 되어 오늘날까지 그 향기를 전하고 있다.강진을 지나 해남으로 발길을 옮기면 달마산 미황사에서 땅끝탑으로 이어지는 남파랑길 90코스가 여행자를 맞이한다. 이 구간의 하이라이트는 기암괴석 사이에 제비집처럼 자리 잡은 도솔암이다.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어 400여 년간 빈터로 남아있던 이곳은 2002년 법조 스님의 원력으로 복원되었다. 헬기조차 접근하기 힘든 험지에 암자를 세우기 위해 산 아래에서 자재를 미리 깎고 단청까지 칠해 올라와 조립한 '사전 제작 방식'의 서사는 수행자의 지독한 정진을 짐작하게 한다.한 칸 남짓한 작은 규모의 도솔암은 거대한 바위 성벽에 둘러싸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은 남해의 일출과 서해의 낙조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천혜의 명당으로, 암자 앞마당에 서면 탁 트인 바다와 달마산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무가 밀려오는 날이면 마치 구름바다 위에 떠 있는 신선의 거처와 같은 풍경을 연출하며 보는 이의 넋을 잃게 만든다. 작은 공간 안에 고요와 수행의 서사를 압축해 놓은 도량의 품격은 길 위에서 지친 여행자의 마음을 정화해 주기에 충분하다.코리아둘레길 남도 구간은 이처럼 유학자의 고뇌와 수행자의 원력이 교차하는 인문학적 성지다. 길은 단순히 흙과 돌로 이루어진 통로가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인물들이 남긴 사유의 흔적을 따라 걷는 시간 여행의 통로가 된다. 완주라는 목표에 매몰되지 않고 발걸음을 늦출 때 비로소 보이는 풍경들은 우리 국토가 간직한 깊은 서사를 들려준다. 만덕산의 차 향기와 달마산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 이 여정은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휴식과 성찰의 의미가 무엇인지 묵묵히 웅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