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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팀버 낙마, 수비진 붕괴 위기

 북중미 월드컵 정상을 노리는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에 비상이 걸렸다.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첫 경기인 일본전을 불과 며칠 앞두고 주전 골키퍼와 핵심 수비 자원이 동시에 전력에서 이탈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대표팀은 최근 미국 뉴욕에서 치러진 우즈베키스탄과의 최종 평가전에서 승리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주력 선수들의 부상 소식에 팀 분위기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가장 먼저 전해진 비보는 수비의 핵심 율리엔 팀버의 낙마 소식이었다. 네덜란드 축구협회는 팀버가 사타구니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해 월드컵 최종 명단에서 제외됐음을 공식화했다. 팀버는 로날드 쿠만 감독의 전술에서 빌드업과 수비의 중심을 잡아주는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었기에 그의 부재는 수비 라인 전체의 균열을 의미한다. 의료진은 팀버가 본선 일정을 정상적으로 소화하기 어렵다는 최종 판단을 내렸고, 결국 그는 짐을 싸야 했다.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 도중 주전 수문장 바르트 페르브뤼헌마저 쓰러지며 골문에도 공백이 생겼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브라이튼에서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던 페르브뤼헌은 상대 공격수와 충돌한 뒤 골반 부위에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교체 아웃됐다. 현장에서는 고관절 부상 가능성까지 언급되며 그가 조별리그 첫 경기인 일본전에 나설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페르브뤼헌은 부상 직후 곧바로 정밀 검사를 위해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 네덜란드 현지 매체들은 이번 부상을 대회 준비 과정에서 발생한 가장 치명적인 순간으로 묘사하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만약 페르브뤼헌의 결장이 장기화될 경우, 네덜란드는 백업 골키퍼인 마르크 플레컨 체제로 본선을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주전 골키퍼가 주는 안정감을 고려할 때 쿠만 감독의 고심은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로날드 쿠만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굳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쿠만 감독은 현재로서는 정밀 진단 결과를 기다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다만 일차적으로는 단순 타박상일 가능성도 열어두며, 페르브뤼헌이 대회 전체를 포기해야 할 정도의 심각한 상태는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뜻을 내비쳤다. 감독의 이러한 발언은 뒤숭숭해진 선수단 내부의 동요를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네덜란드는 이제 전력의 핵심 두 명을 잃은 채로 일본과의 첫 경기를 준비해야 하는 가시밭길에 놓였다. 수비의 핵과 최후방 보루가 동시에 흔들리면서 조별리그 운영 계획 전반에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일본이 최근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이변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네덜란드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본선 첫 단추를 꿸 수 있을지 전 세계 축구 팬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정약용의 500권 저술 산실, 다산초당의 인문학

는 결과가 아니라, 발길 닿는 구간마다 깃든 땅의 역사와 대화하며 천천히 걷는 과정에 있다. 그중에서도 전남 강진을 지나는 남파랑길 83코스는 조선의 대유학자 다산 정약용의 고립과 깊은 사유가 층층이 쌓인 공간으로 여행자들을 이끈다. 약 17.5km에 달하는 이 길의 중심에는 야생 차나무가 무성해 '다산'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만덕산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강진 유배 시절 다산의 삶은 만덕산 자락의 백련사와 그곳에서 만난 혜장선사와의 인연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1805년 봄, 유배객 신분으로 처음 백련사를 찾은 정약용은 주지였던 혜장과 학문적 깊이에 감복하며 신분을 초월한 우정을 쌓기 시작했다. 절망적인 유배 생활 속에서 혜장은 다산에게 지적인 동반자이자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1808년 다산이 백련사 인근의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긴 후 두 사람이 수시로 오갔던 800m의 산길은 오늘날 '우정길'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도보 여행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한다.다산초당은 단청조차 없는 소박한 목조 건물이지만, 그곳에 머문 11년 동안 정약용은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등 5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유배라는 물리적 억압조차 그의 사유의 깊이를 가둘 수 없었음을 증명하듯, 초당 곳곳에는 선비의 여유와 기품이 흐른다. 만덕산 능선에서 내려다보이는 강진만의 풍경은 고독한 유배객의 시선을 넓혀주었을 것이며, 지천에 널린 야생 차나무는 그의 호가 된 '다산'의 유래가 되어 오늘날까지 그 향기를 전하고 있다.강진을 지나 해남으로 발길을 옮기면 달마산 미황사에서 땅끝탑으로 이어지는 남파랑길 90코스가 여행자를 맞이한다. 이 구간의 하이라이트는 기암괴석 사이에 제비집처럼 자리 잡은 도솔암이다.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어 400여 년간 빈터로 남아있던 이곳은 2002년 법조 스님의 원력으로 복원되었다. 헬기조차 접근하기 힘든 험지에 암자를 세우기 위해 산 아래에서 자재를 미리 깎고 단청까지 칠해 올라와 조립한 '사전 제작 방식'의 서사는 수행자의 지독한 정진을 짐작하게 한다.한 칸 남짓한 작은 규모의 도솔암은 거대한 바위 성벽에 둘러싸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은 남해의 일출과 서해의 낙조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천혜의 명당으로, 암자 앞마당에 서면 탁 트인 바다와 달마산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무가 밀려오는 날이면 마치 구름바다 위에 떠 있는 신선의 거처와 같은 풍경을 연출하며 보는 이의 넋을 잃게 만든다. 작은 공간 안에 고요와 수행의 서사를 압축해 놓은 도량의 품격은 길 위에서 지친 여행자의 마음을 정화해 주기에 충분하다.코리아둘레길 남도 구간은 이처럼 유학자의 고뇌와 수행자의 원력이 교차하는 인문학적 성지다. 길은 단순히 흙과 돌로 이루어진 통로가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인물들이 남긴 사유의 흔적을 따라 걷는 시간 여행의 통로가 된다. 완주라는 목표에 매몰되지 않고 발걸음을 늦출 때 비로소 보이는 풍경들은 우리 국토가 간직한 깊은 서사를 들려준다. 만덕산의 차 향기와 달마산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 이 여정은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휴식과 성찰의 의미가 무엇인지 묵묵히 웅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