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선관위 앞 '소중한 0표' 포스터 게재

 세계적인 광고 전문가 이제석 씨가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문 앞에 나타나 현 시국을 관통하는 날카로운 풍자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는 선관위의 상징적인 슬로건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투표용지 부족으로 참정권을 침해당한 국민들의 허탈감을 예술적 언어로 표현했다. 현장에는 취재진과 시민들이 몰려들었으며, 선관위 측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대응하며 긴장된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날 퍼포먼스의 핵심은 선관위가 오랫동안 사용해온 '민주주의 꽃은 선거입니다'라는 문구를 '민주주의 꽃은 매진입니다'로 바꾼 현수막이었다. 이는 본투표 당일 투표소에서 용지가 동나 발길을 돌려야 했던 수많은 유권자의 분노를 직관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현수막을 내건 직후 선관위 관계자들이 달려 나와 이를 강제로 철거하는 과정에서 잠시 소란이 빚어지기도 했으나, 이 씨는 묵묵히 다음 퍼포먼스를 이어갔다.

 


이어 공개된 포스터에는 '당신의 소중한 0표'라는 문구와 함께 텅 빈 투표함에 손을 뻗는 유권자의 모습이 담겼다. 투표용지가 있어야 할 자리가 공백으로 남겨진 이 이미지는 이번 선거 관리 부실이 단순한 행정 실수를 넘어 국민의 소중한 표를 '0표'로 만들어버린 폭거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씨는 이 포스터를 온라인에 무료로 배포해 누구나 출력하여 항의의 표시로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단순한 1인 시위에 그치지 않고 이 씨는 이번 사태를 공론화하기 위한 후속 조치도 예고했다. 그는 청년 광고인들을 대상으로 '선관위 홍보 포스터 공모전'을 개최하여, 현장 실무에 무능한 선관위의 실태를 알리는 작품들을 수집할 계획이다. 선정된 최우수작들은 실제 출력물로 제작되어 선관위 수뇌부에 우편으로 공식 전달될 예정이며, 이는 예술계가 이번 사태를 얼마나 엄중하게 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선관위 내부에서는 이번 퍼포먼스에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의 압수수색과 국정조사가 시작된 시점에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인물의 풍자까지 더해지면서 조직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기 때문이다. 현장 관계자들은 퍼포먼스 도구를 압수하고 질서 유지에 나섰지만, 이미 온라인상에서는 해당 이미지들이 급속도로 퍼지며 선관위를 향한 조롱 섞인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제석 씨는 이번 퍼포먼스에 사용된 모든 작업물을 선관위에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현장을 떠났다. 그는 이번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목소리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과천 선관위 앞은 퍼포먼스가 끝난 뒤에도 시민들이 남긴 항의 문구와 꽃바구니들이 놓여 있으며, 경찰 인력이 배치되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정약용의 500권 저술 산실, 다산초당의 인문학

는 결과가 아니라, 발길 닿는 구간마다 깃든 땅의 역사와 대화하며 천천히 걷는 과정에 있다. 그중에서도 전남 강진을 지나는 남파랑길 83코스는 조선의 대유학자 다산 정약용의 고립과 깊은 사유가 층층이 쌓인 공간으로 여행자들을 이끈다. 약 17.5km에 달하는 이 길의 중심에는 야생 차나무가 무성해 '다산'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만덕산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강진 유배 시절 다산의 삶은 만덕산 자락의 백련사와 그곳에서 만난 혜장선사와의 인연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1805년 봄, 유배객 신분으로 처음 백련사를 찾은 정약용은 주지였던 혜장과 학문적 깊이에 감복하며 신분을 초월한 우정을 쌓기 시작했다. 절망적인 유배 생활 속에서 혜장은 다산에게 지적인 동반자이자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1808년 다산이 백련사 인근의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긴 후 두 사람이 수시로 오갔던 800m의 산길은 오늘날 '우정길'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도보 여행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한다.다산초당은 단청조차 없는 소박한 목조 건물이지만, 그곳에 머문 11년 동안 정약용은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등 5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유배라는 물리적 억압조차 그의 사유의 깊이를 가둘 수 없었음을 증명하듯, 초당 곳곳에는 선비의 여유와 기품이 흐른다. 만덕산 능선에서 내려다보이는 강진만의 풍경은 고독한 유배객의 시선을 넓혀주었을 것이며, 지천에 널린 야생 차나무는 그의 호가 된 '다산'의 유래가 되어 오늘날까지 그 향기를 전하고 있다.강진을 지나 해남으로 발길을 옮기면 달마산 미황사에서 땅끝탑으로 이어지는 남파랑길 90코스가 여행자를 맞이한다. 이 구간의 하이라이트는 기암괴석 사이에 제비집처럼 자리 잡은 도솔암이다.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어 400여 년간 빈터로 남아있던 이곳은 2002년 법조 스님의 원력으로 복원되었다. 헬기조차 접근하기 힘든 험지에 암자를 세우기 위해 산 아래에서 자재를 미리 깎고 단청까지 칠해 올라와 조립한 '사전 제작 방식'의 서사는 수행자의 지독한 정진을 짐작하게 한다.한 칸 남짓한 작은 규모의 도솔암은 거대한 바위 성벽에 둘러싸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은 남해의 일출과 서해의 낙조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천혜의 명당으로, 암자 앞마당에 서면 탁 트인 바다와 달마산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무가 밀려오는 날이면 마치 구름바다 위에 떠 있는 신선의 거처와 같은 풍경을 연출하며 보는 이의 넋을 잃게 만든다. 작은 공간 안에 고요와 수행의 서사를 압축해 놓은 도량의 품격은 길 위에서 지친 여행자의 마음을 정화해 주기에 충분하다.코리아둘레길 남도 구간은 이처럼 유학자의 고뇌와 수행자의 원력이 교차하는 인문학적 성지다. 길은 단순히 흙과 돌로 이루어진 통로가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인물들이 남긴 사유의 흔적을 따라 걷는 시간 여행의 통로가 된다. 완주라는 목표에 매몰되지 않고 발걸음을 늦출 때 비로소 보이는 풍경들은 우리 국토가 간직한 깊은 서사를 들려준다. 만덕산의 차 향기와 달마산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 이 여정은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휴식과 성찰의 의미가 무엇인지 묵묵히 웅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