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슈

국중박 분장놀이, 전국 13곳으로 판 키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 유물을 시민들이 창의적으로 재해석해 표현하는 ‘국중박 분장놀이’가 올해부터 전국을 무대로 한 초대형 문화 축제로 거듭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해 청년세대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 행사를 전국 13개 지방 국립박물관이 모두 참여하는 전국 단위 행사로 확대 개편하고, 다음 달 31일까지 대대적인 참가자 모집에 나선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박물관이 단순히 유물을 보관하는 장소를 넘어, 대중의 상상력이 결합된 역동적인 문화 생산 기지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올해 행사의 가장 큰 특징은 전국 14개 국립박물관의 대표 유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이다. 박물관 측은 모집 단계부터 각 지역 박물관의 개성이 담긴 포스터를 제작해 배포했으며, 순차적으로 공개될 권역별 콘텐츠를 통해 지역 유산의 다채로운 매력을 알릴 계획이다. 이는 서울 중심의 문화 소비를 전국으로 분산시키고, 지역 주민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유물을 더 친숙하고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전국 편을 통해 각 권역의 대표 유물이 참가자들의 기발한 분장과 퍼포먼스를 거쳐 현대적인 감각으로 되살아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참가자들은 박물관에 전시된 정적인 유물에 자신만의 해석을 덧입혀 생명력을 불어넣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지역 유산의 가치를 한층 입체적으로 선보이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되며, 특히 SNS를 통해 공유되는 화려한 분장 사진들은 'K-뮤지엄'의 새로운 홍보 수단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본선 무대는 9월 첫째 주와 둘째 주말에 걸쳐 전국 4개 권역 거점 박물관에서 화려하게 펼쳐진다. 9월 5일 국립춘천박물관을 시작으로 공주, 대구, 전주 등 각 지역의 대표 박물관들이 순차적으로 경연장이 된다. 각 권역 본선은 지역 축제와 연계되어 해당 지역 시민들에게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며, 본선을 통과한 팀들은 9월 19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열리는 대망의 최종 결선에 진출하게 된다.

 


행사 규모가 커진 만큼 시상 및 지원 혜택도 대폭 강화되었다. 최종 결선에 진출하는 20개 팀 중 국립중앙박물관장상을 수상하는 5개 팀에는 각각 300만 원의 상금이 수여되며, 최우수상과 참가상 등 총상금 규모가 예년에 비해 크게 늘었다. 또한 본선 진출 팀에게는 별도의 참가 상금과 교통비가 지급되어 전국 각지의 재기발랄한 참가자들이 부담 없이 축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번 분장놀이의 전국 확대를 통해 박물관이 전 세대와 소통하는 열린 공간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 국립박물관이 힘을 합쳐 만드는 이번 축제는 각 지역 유산의 매력을 전 국민이 즐기는 기회가 될 것이며, 나아가 한국 전통문화가 현대적 콘텐츠로서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전국의 박물관은 유물을 형상화한 시민들의 열기로 뜨겁게 달궈질 준비를 마쳤다.

 

정약용의 500권 저술 산실, 다산초당의 인문학

는 결과가 아니라, 발길 닿는 구간마다 깃든 땅의 역사와 대화하며 천천히 걷는 과정에 있다. 그중에서도 전남 강진을 지나는 남파랑길 83코스는 조선의 대유학자 다산 정약용의 고립과 깊은 사유가 층층이 쌓인 공간으로 여행자들을 이끈다. 약 17.5km에 달하는 이 길의 중심에는 야생 차나무가 무성해 '다산'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만덕산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강진 유배 시절 다산의 삶은 만덕산 자락의 백련사와 그곳에서 만난 혜장선사와의 인연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1805년 봄, 유배객 신분으로 처음 백련사를 찾은 정약용은 주지였던 혜장과 학문적 깊이에 감복하며 신분을 초월한 우정을 쌓기 시작했다. 절망적인 유배 생활 속에서 혜장은 다산에게 지적인 동반자이자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1808년 다산이 백련사 인근의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긴 후 두 사람이 수시로 오갔던 800m의 산길은 오늘날 '우정길'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도보 여행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한다.다산초당은 단청조차 없는 소박한 목조 건물이지만, 그곳에 머문 11년 동안 정약용은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등 5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유배라는 물리적 억압조차 그의 사유의 깊이를 가둘 수 없었음을 증명하듯, 초당 곳곳에는 선비의 여유와 기품이 흐른다. 만덕산 능선에서 내려다보이는 강진만의 풍경은 고독한 유배객의 시선을 넓혀주었을 것이며, 지천에 널린 야생 차나무는 그의 호가 된 '다산'의 유래가 되어 오늘날까지 그 향기를 전하고 있다.강진을 지나 해남으로 발길을 옮기면 달마산 미황사에서 땅끝탑으로 이어지는 남파랑길 90코스가 여행자를 맞이한다. 이 구간의 하이라이트는 기암괴석 사이에 제비집처럼 자리 잡은 도솔암이다.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어 400여 년간 빈터로 남아있던 이곳은 2002년 법조 스님의 원력으로 복원되었다. 헬기조차 접근하기 힘든 험지에 암자를 세우기 위해 산 아래에서 자재를 미리 깎고 단청까지 칠해 올라와 조립한 '사전 제작 방식'의 서사는 수행자의 지독한 정진을 짐작하게 한다.한 칸 남짓한 작은 규모의 도솔암은 거대한 바위 성벽에 둘러싸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은 남해의 일출과 서해의 낙조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천혜의 명당으로, 암자 앞마당에 서면 탁 트인 바다와 달마산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무가 밀려오는 날이면 마치 구름바다 위에 떠 있는 신선의 거처와 같은 풍경을 연출하며 보는 이의 넋을 잃게 만든다. 작은 공간 안에 고요와 수행의 서사를 압축해 놓은 도량의 품격은 길 위에서 지친 여행자의 마음을 정화해 주기에 충분하다.코리아둘레길 남도 구간은 이처럼 유학자의 고뇌와 수행자의 원력이 교차하는 인문학적 성지다. 길은 단순히 흙과 돌로 이루어진 통로가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인물들이 남긴 사유의 흔적을 따라 걷는 시간 여행의 통로가 된다. 완주라는 목표에 매몰되지 않고 발걸음을 늦출 때 비로소 보이는 풍경들은 우리 국토가 간직한 깊은 서사를 들려준다. 만덕산의 차 향기와 달마산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 이 여정은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휴식과 성찰의 의미가 무엇인지 묵묵히 웅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