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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란 충돌 위기 고조…트럼프 “오늘 더 세게”, 이란 “맞설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을 향해 추가 군사 대응을 예고하면서 중동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히는 동시에, 미국이 호르무즈해협에서 민간 선박의 통항을 지원하는 비밀 작전을 수행해왔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어제 이란을 강하게 때렸고, 오늘은 더 강하게 다시 타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미 육군 아파치 헬기가 격추된 사건을 언급하며, 이에 대한 보복 차원의 공격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처음에는 헬기 격추 사실을 부인했지만 이후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군이 헬기 동체에 박힌 불발탄을 확보하고 있다며, 이란의 책임을 입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발전소와 교량 등 주요 기반시설에 대한 공습 가능성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며 추가 타격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도 강경한 메시지를 이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해군이 이란을 상대로 매우 효과적인 봉쇄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란의 무역이 사실상 마비됐고 경제도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란이 군인 급여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주장했다.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발언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미군에 유조선과 상선의 안전한 통항을 돕는 비밀 임무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작전 덕분에 1억 배럴이 넘는 석유가 해협을 통과해 국제 시장에 공급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제유가가 배럴당 250달러까지 치솟지 않고 85~90달러 수준에 머문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앞서 공개적으로 중단됐던 호르무즈해협 통항 지원 작전이 실제로는 비밀리에 계속됐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그는 200척이 넘는 상선이 해협을 통과했다며, 이는 미국이 호르무즈해협의 통제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란의 군사력은 패배했고 경제는 무너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란은 즉각 반발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기반시설 타격 발언에 대해 “절박함의 표현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교통망과 전력, 수자원 시설 등은 국민의 생명줄이라며, 이를 공격하겠다는 위협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이란의 의지를 꺾지 못한 데서 나온 압박이라고 주장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란이 전문가들의 역량과 국민적 단합을 바탕으로 어떤 위협에도 굳건히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과 이란 사이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한층 커지는 분위기다.

 

협상 문제를 둘러싼 신경전도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협상이 사실상 끝났지만 이란이 시간을 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양측이 합의에 매우 가까워졌으며, 이란이 문서에 서명하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란은 절대 핵무기를 보유할 수 없고, 이란도 이미 이에 동의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스라엘도 이란과 연결된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겨냥한 압박을 이어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레바논 국민을 향해 이스라엘은 레바논이 아니라 헤즈볼라와 싸우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헤즈볼라가 이란의 지시에 따라 레바논 영토를 이스라엘 공격에 이용하고 있다며, 레바논 국민이 헤즈볼라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레바논과의 평화를 원한다고 강조하면서도, 그 길을 막는 유일한 장애물이 헤즈볼라라고 말했다. 이란은 미국과의 휴전 조건에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휴전도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중재에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교전은 완전히 멈추지 않고 있어 중동 전선은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다.

 

윈난 지눠산, 300년 탄압 딛고 부활

기술을 통해 독자적인 공동체 문화를 유지해 왔다. 특히 지눠산은 과거 청나라 시절부터 보이차의 핵심 산지로 명성을 떨쳤으며, 이곳에서 생산되는 찻잎은 그 품질과 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영광은 오히려 외부 세력의 질시를 불러일으켰고, 지눠족은 오랜 시간 동안 혹독한 수난의 역사를 감내해야 했다.지눠족의 기원에는 삼국시대 제갈공명과 관련된 흥미로운 전설이 서려 있다. 남만 정벌 당시 대열에서 이탈한 촉나라 병사들이 현지 토착민과 결합하여 형성된 민족이라는 설이다. 이 때문에 지눠족은 제갈공명을 단순한 정복자가 아닌 차 씨앗을 전해준 '차의 조상'으로 숭배하며 매년 차조회를 열어 경의를 표한다. 외부인을 배척하기보다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여 민족의 번영을 꾀했던 이들의 개방적인 태도는 씨족 내 혼인을 엄격히 금지하고 외지인과의 결합을 장려했던 독특한 혼인 풍습에서도 잘 드러난다.이들이 보유한 차 제조 기술은 현대 차 문화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찻잎을 숯불에 구워 우려내는 '화소차'는 일본의 유명한 호지차보다 훨씬 앞선 전통을 자랑하며, 고온 로스팅을 통해 카페인 부담을 낮춘 것이 특징이다. 또한 찻잎을 달여 고체 형태로 만든 '차고'는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차로 평가받을 만큼 혁신적인 기술력을 보여준다. 찻잎을 나물처럼 무쳐 먹는 '량반차' 습속은 차를 단순한 음료가 아닌 생존을 위한 식량으로 활용했던 소수민족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그러나 지눠족의 차 산업은 청나라의 가혹한 통치 아래 철저히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다. 18세기 한족 상인과의 갈등을 빌미로 시작된 청나라의 보복은 마을과 다원을 잿더미로 만들었고, 이후 약 177년 동안 지눠족의 독자적인 차 생산은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딴 찻잎을 인근 지역인 이우나 이방으로 보내야만 했으며, 그 과정에서 지눠산의 명성은 점차 퇴색되었다. 20세기 들어서도 전쟁과 내전의 화마를 피하지 못한 채 고귀한 차산은 화전민들의 터전으로 변하며 그 규모가 급격히 축소되었다.몰락의 길을 걷던 지눠족에게 반전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20세기 말 보이차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밀림 속에 방치되었던 수백 년 수령의 고차수들이 다시 발견되었고, 여기서 생산된 고수차가 시장에서 천문학적인 가격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300년 넘게 이어온 탄압과 빈곤의 사슬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지눠족은 자신들의 녹색 보물인 차나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경제적 자립을 꾀했고, 그 결과 2019년 윈난성 소수민족 중 가장 먼저 완전한 빈곤 퇴치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현재 지눠산은 사통팔달의 도로망이 구축되어 외부와의 소통이 원활해졌으며, 아열대 기후의 이점을 살린 차 재배는 여전히 이들의 주된 수입원이다. 지눠족은 제갈공명의 탄생일에 풍등을 올리며 조상을 기리는 전통을 이어가는 동시에, 현대적인 차 가공 기술을 접목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과거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지눠족은 이제 윈난성을 대표하는 차 생산지로서의 위상을 회복하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토템 신앙과 문화를 보존한 채 지눠산의 안개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