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고개 들어라"… 광주일고, 배재고 사과 수용

 고교야구 현장에서 불거진 부적절한 응원 구호로 갈등을 빚었던 서울 배재고등학교와 광주제일고등학교가 마침내 반목의 시간을 끝내고 화합의 손을 맞잡았다. 특정 지역과 역사를 비하하는 은어를 사용해 사회적 공분을 샀던 이번 사태는 피해 학교인 광주일고가 상대 학생들을 포용하는 결단을 내리면서 교육적 해결의 모범 사례로 남게 됐다. 양교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을 단순한 갈등을 넘어 서로의 역사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성장의 발판으로 삼기로 약속했다.

 

지난 6일 정근식 서울시교육감과 이효준 배재고 교장을 포함한 배재고 방문단 68명은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광주일고를 찾아 공식적인 사죄의 뜻을 전했다. 이들은 지난달 청룡기 대회 당시 발생한 '스타벅스' 비하 구호 논란에 대해 고개를 숙이며 지역사회와 광주일고 구성원들에게 진심 어린 용서를 구했다. 배재고 야구부 지도자들과 학생 선수들은 직접 작성한 사과문을 전달하며 자신들의 과오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음을 인정하고 깊은 반성의 기미를 보였다.

 


앞서 이번 논란은 배재고 응원석에서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를 비하하는 의미가 담긴 구호를 외치면서 시작되어 체육계 전체에 큰 충격을 안겼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배재고에 6개월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고, 광주 지역사회에서는 거센 항의가 이어졌다. 사과 방문 추진 과정에서 폭발물 협박 전화가 걸려오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으나, 광주일고 측은 갈등의 장기화 대신 관용을 통한 해결을 선택하며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광주일고는 찾아온 학생들을 다그치기보다 따뜻한 격려로 품어 안으며 명문교다운 품격을 보여주었다. 이규연 광주일고 교장은 배재고 학생들에게 어깨를 펴고 당당히 살아가라고 독려하며, 과거 독립운동 당시 두 학교가 함께 옥고를 치렀던 역사적 유대감을 강조했다. 광주일고 야구부 역시 그라운드에서 정정당당하게 다시 승부하는 것이 진정한 용서를 구하는 길이라며 화답했고, 배재고 선수들은 인성과 태도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답했다.

 


김대중 전남광주통합특별시교육감은 이번 방문이 단순한 사과를 넘어 민주주의와 상호 존중을 배우는 실천적 교육의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학생들이 과거의 잘못을 돌아보고 미래의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새출발의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양측 교육계 인사들은 이번 사태가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지역 갈등과 혐오 표현의 문제를 성찰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며, 청소년기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고 입을 모았다.

 

공식 행사를 마친 배재고 방문단은 곧바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동해 오월 영령 앞에 참배하며 참회의 시간을 가졌다. 야구부원들은 묘역을 둘러보며 자신들이 무심코 던진 말이 어떤 역사적 고통을 건드렸는지 직접 확인하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배재고 선수단은 징계 기간 동안 자숙하며 인성 교육에 매진할 계획이며, 광주일고 학생들과는 향후 친선 경기 등을 통해 우호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기로 하고 광주 일정을 마무리했다.

 

 

 

유럽인가, 아시아인가… 이스탄불의 유혹

건축 유산들이 제국의 영광을 증언하며 서 있다. 1461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전통시장 그랜드 바자르는 수천 개의 상점이 미로처럼 얽혀 매일 수십만 명의 방문객을 불러모은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예니 모스크의 400년 된 실루엣은 이스탄불을 찾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중세의 시간을 선사하며 도시의 정체성을 각인시킨다.갈라타 다리를 건너 신시가지로 넘어가면 튀르키예의 현대적인 얼굴이 드러난다. 번화가인 이스티클랄 거리는 세련된 카페와 악기점들이 줄지어 있어 부산의 서면을 떠올리게 하는 활기찬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2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바클라바 전문점 '카라쾨이 귈뤼올루'는 품질 유지를 위해 본점 한 곳만 고집하는 장인 정신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달콤한 페이스트리는 신시가지의 감각적인 미술관과 맛집 탐방에 지친 여행객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휴식을 제공한다.조금 더 여유로운 현지인의 일상을 엿보고 싶다면 페리를 타고 아시아지구인 카디쿄이로 향하는 것이 좋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가로지르는 30분간의 항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여행 코스가 되어 도시의 전경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시끌벅적한 관광지에서 벗어난 아시아지구의 골목길은 아기자기한 식당과 카페들이 숨어 있어 느긋한 산책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이처럼 이스탄불은 세 개의 지구가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며 여행자들에게 지루할 틈 없는 여정을 선사한다.이스탄불의 진면목은 길거리에서 만나는 다채로운 미식에서 완성된다. 흔히 케밥이라 하면 고기 기둥을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숯불에 구운 양 곱창을 향료와 섞어 빵에 끼워 먹는 '코코레치'처럼 강렬한 풍미의 요리들이 가득하다. 고등어를 통째로 구워 채소와 곁들인 생선 샌드위치나 생고기 대신 통밀 반죽을 사용해 채식 요리로 변신한 '치이 쾨프테'는 이 도시의 유연한 식문화를 잘 보여준다. 여기에 자색 당근을 발효시킨 짭짤한 음료 '샬감 수유'를 곁들이면 기름진 맛을 잡아주는 의외의 조화를 경험하게 된다.도시의 소란함을 뒤로하고 남서부 데니즐리로 향하면 비현실적인 풍경의 파묵칼레가 나타난다. '목화의 성'이라는 이름처럼 하얀 석회층이 계단식으로 쌓인 이곳은 푸른 온천수가 층층이 고여 외계 행성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인 이곳은 지형 보호를 위해 반드시 맨발로 걸어야 하며, 36도 안팎의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는 것만으로도 피부와 관절의 피로가 풀리는 효험을 느낄 수 있다. 석회층 바로 위에는 기원전 2세기에 건설된 고대 도시 히에라폴리스의 유적이 광활하게 펼쳐져 자연과 역사의 경이로움을 동시에 전한다.히에라폴리스의 하이라이트는 1만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로마식 극장이다. 서기 129년에 건립된 이 극장은 무대 중앙의 작은 소리가 맨 윗줄까지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정교한 설계 기술을 자랑한다. 극장 내부의 '클레오파트라 수영장'은 고대 건축물의 잔해가 물속에 잠겨 있는 독특한 노천 온천으로, 과거의 영웅들이 즐겼던 휴식을 오늘날의 여행객들이 그대로 재현할 수 있게 한다. 튀르키예의 광활한 대지 위에 수놓아진 이러한 유산들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인류 문명의 깊이를 체감하게 하는 묵직한 감동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