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슈

광저우 샤미엔에 핀 K-아트, 김병종의 풍죽

 아시아 최대 미술 시장인 중국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정수를 알리는 대규모 전시가 열려 화제를 모으고 있다. 내년 한중 수교 35주년을 앞둔 시점에 광저우의 유서 깊은 현대 미술관 AIO에서 개최된 김병종 작가의 개인전 '판타지 오브 라이프'가 그 주인공이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14년 베이징 전시 이후 10년 만에 중국 본토에서 열리는 초대전으로, 한국화의 전통적 미감과 현대적 감각이 조화를 이룬 김 화백의 예술 세계를 집대성했다. 광저우의 조계지였던 샤미엔 지역의 독특한 역사적 배경과 어우러진 이번 전시는 현지 미술 애호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K-현대미술의 저력을 다시 한번 입증하고 있다.

 

전시가 열리는 AIO미술관은 1914년 프랑스 인도차이나은행 지점으로 건립된 유서 깊은 건축물로, 동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샤미엔의 랜드마크다. 홍콩의 사업가 도로시 웡성킹 회장이 복원한 이 공간은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벽난로와 응접실이 전시장으로 변모해 김 작가의 작품들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서구적인 비례감을 가진 건축물 내부에 걸린 한국적 색채의 작품들은 이질적이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이번 전시를 계기로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과 AIO미술관이 업무 협약을 맺으면서, 향후 두 기관은 전시 기획과 미술 교육 분야에서 지속적인 문화 교류를 이어가기로 약속했다.

 


김병종 화백은 중국과의 인연이 남다른 작가다. 지난 2014년 시진핑 주석이 서울대학교를 방문했을 때 선물했던 '서울대학교 정문 설경'은 두 나라의 굳건한 연대를 상징하는 붉은 소나무를 묘사해 큰 감동을 준 바 있다. 10년 만에 다시 중국 관객과 만난 작가는 평생을 바쳐 탐구해 온 '생명의 미학'을 화폭에 펼쳐 보였다. 꽃과 나무, 자연의 순환을 담은 '생명의 노래' 연작은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삶에 대한 긍정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형형색색의 생명 형상들은 급변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지친 관람객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의 에너지를 선사하고 있다.

 

최근 새롭게 선보인 '풍죽' 연작은 이번 전시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다. 바람이 지나가는 대나무 숲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들은 고고한 선비의 지조와 한국적 정취를 강렬한 색채로 담아냈다. 파란색과 검은색으로 대비되는 풍죽 시리즈는 간결하면서도 묵직한 기품을 풍기며 근대 건축물의 고풍스러운 실내와 완벽한 합을 이룬다. 프랑스 출신 기획자 파비앙 파코리와 김주영 큐레이터가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는 아시아 문명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가치를 예술로 증명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술이 가진 치유의 힘과 사색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하는 구성이 돋보인다.

 


전시가 열리는 샤미엔 지역은 19세기 아편 전쟁 이후 영국과 프랑스의 조계지로 쓰였던 곳으로, 현재 150여 채의 근대 건축물이 보존되어 있다. 김병종 작가의 작품을 감상한 뒤 이어지는 샤미엔 산책은 전시의 감동을 확장하는 특별한 경험이 된다. 민트색 스타벅스와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운 교회 등 이국적인 풍경은 광저우 시민들과 여행자들에게 사랑받는 휴식처다. 주강 변을 따라 걷는 낭만적인 산책로는 낮과 밤이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며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역사적 상흔이 남은 공간이 이제는 예술과 일상이 만나는 평화로운 문화의 장으로 탈바꿈한 셈이다.

 

이번 전시는 내년 한중 수교 35주년을 앞두고 양국의 문화적 우정을 다지는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동아시아가 공유하는 자연과 인간성에 대한 담론을 확장하며, 21세기 새로운 문화 교류의 흐름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병종 화백의 작품 세계가 보여주는 생동감 넘치는 색채와 서정적 형태는 국경을 넘어 인간의 보편적 감수성을 자극한다. 광저우의 역사적 관문에서 시작된 이 작은 물결이 향후 아시아 미술계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전시는 7월 27일까지 계속되며, 한국 현대미술의 아름다움을 중국 대륙에 깊이 각인시키고 있다.

 

폭염 씻는 옥빛 물길, 강원도 계곡 트레킹

수직 절벽인 '뼝대'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다. 이곳은 평소 자갈밭이었다가 비가 온 뒤에만 옥빛 물길이 열리는 복류천의 특성을 지녀, 적절한 시기에 방문하면 수억 년의 세월이 빚은 대자연의 신비를 온몸으로 만끽할 수 있다. 계곡 중간에 자리한 '숲속책방'은 트레커들에게 잠시 쉬어가는 여유를 선사하며, 자연과 문학이 공존하는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양양의 법수치 계곡은 오지 중의 오지로 꼽히는 은밀한 휴식처다. 오대산 자락에서 발원한 맑은 물줄기가 굽이치는 이곳은 수령 500년이 넘는 거대한 제왕송과 폐교된 분교가 어우러져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법수치 마을까지 이어지는 8km의 물길은 한 번 진입하면 되돌아오거나 끝까지 가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지만,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용소의 짙은 물빛은 트레커들의 피로를 씻어주기에 충분하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의 자연 속에서 즐기는 물길 산책은 진정한 고립의 미학을 선사한다.삼척과 울진의 경계에 위치한 응봉산 자락의 덕풍계곡은 기암괴석과 협곡이 빚어낸 한 폭의 산수화다. 특히 용소골의 제1용소와 제2용소는 거대한 검은 벽이 소를 둘러싸고 있어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한다. 험준한 구간마다 설치된 철제 계단과 난간 덕분에 초보자도 비교적 안전하게 협곡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 8m 높이에서 쏟아지는 폭포수와 용트림하는 물줄기는 폭염조차 침범하지 못하는 서늘한 기운을 뿜어내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연이 선사하는 경이로움에 감탄하게 만든다.인제 방태산 자락의 아침가리 계곡은 '삼둔 사가리'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원시림의 보고다. 방동약수에서 시작해 조경동교를 거쳐 진동리까지 이어지는 11km 구간은 산길과 물길이 조화롭게 섞여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계곡 중간의 뚝발소처럼 깊고 푸른 웅덩이는 섬뜩할 정도의 신비로움을 자아내며 트레커들을 유혹한다. 아침에 잠시 밭을 갈 정도의 해만 든다는 이름처럼, 울창한 숲이 만들어낸 천연 지붕 아래를 걷다 보면 도심의 열기는 어느새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된다.계곡 트레킹은 일반적인 등산보다 체력 소모가 크고 위험 요소가 많아 철저한 준비가 필수적이다. 이끼 낀 바위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접지력이 좋은 전용 신발을 착용해야 하며, 갑작스러운 수위 상승에 대비해 기상 정보를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또한 수심이 깊은 소(沼) 주변에서는 안전사고에 각별히 유의해야 하며, 체온 유지를 위한 여벌 옷과 방수 팩 준비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연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지정된 경로를 이탈하지 않고 자신의 체력 수준에 맞는 코스를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강원도의 깊은 골짜기마다 숨겨진 옥빛 물길은 올여름 폭염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최고의 안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경험은 단순한 피서를 넘어 자연과 하나 되는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다. 정선의 뼝대부터 인제의 원시림까지,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는 계곡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트레커들을 환대하고 있다. 이번 주말, 무거운 일상의 짐을 내려놓고 강원도의 청량한 물길 속으로 뛰어들어 보는 것은 무더위를 이겨내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