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큐브

장동혁 "이재명, 연임 없다고 직접 선언하라"

 조정식 국회의장이 현직 대통령의 연임을 허용하는 개헌이 국민의 선택에 달렸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자 국민의힘이 이를 강력히 비판하며 정면 대응에 나섰다. 여권은 조 의장의 발언을 단순한 개인적 견해로 치부할 수 없으며, 사실상 이재명 대통령의 재집권을 위한 군불 때기라고 규정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조 의장이 과거 대선 설계자에서 이제는 연임 설계자로 변신했다며, 대통령과 친명계가 연임에 집착하는 이유는 사법적 단죄를 피할 유일한 탈출구가 권력 연장뿐이기 때문이라고 날을 세웠다.

 

장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연임 의사가 없음을 국민 앞에 명확히 선언할 것을 촉구했다. 만약 국회의장과 여당이 대통령의 재판 결과를 뒤집거나 연임을 위한 개헌을 강행하려 한다면, 그것은 현 정권의 종말을 앞당기는 행위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당 지도부는 이번 사태를 헌법 질서를 흔드는 중대한 도전으로 보고, 개헌 논의가 특정 정치인의 권력 연장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당내 주요 인사들도 사회관계망서비스와 논평을 통해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정희용 사무총장은 조 의장 측의 해명이 오히려 평소 품고 있던 연임 프로젝트의 본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하며 대통령의 직접적인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박충권 수석대변인 역시 국가 의전 서열 2위인 국회의장이 특정 정파의 하수인을 자처하며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발언을 한 것은 자격 미달이라며 의장직 사퇴를 압박하는 등 공세의 고삐를 죄었다.

 

중진 의원들 사이에서는 국회의장에 대한 탄핵론까지 제기되며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다. 조경태 의원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조 의장의 발언이 국헌 문란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비판하며, 이는 단순히 사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탄핵 사유에 해당할 만큼 엄중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여권 내부에서는 이번 발언이 야권 내에서 조직적으로 준비된 개헌 시나리오의 일부라는 의구심이 확산되고 있어 향후 국회 운영에도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

 


민주당 측은 조 의장의 발언이 원론적인 수준의 개헌론을 언급한 것이라며 파문 확산을 경계하고 있지만, 여당은 이를 이재명 정부의 장기 집권 시나리오가 본격 가동된 증거로 보고 있다. 특히 대통령의 연임제가 실현될 경우 현재 진행 중인 각종 재판과 수사에 미칠 영향을 고려할 때, 이번 개헌 논의는 단순한 권력 구조 개편을 넘어 정권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는 것이 여당의 시각이다. 이에 따라 여야는 개헌의 시기와 방향성을 두고 타협 없는 평행선을 달릴 것으로 보인다.

 

결국 조정식 의장의 발언은 잠잠하던 개헌 논의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으며, 향후 정국은 '연임 개헌'을 둘러싼 찬반 양론으로 급격히 재편될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개헌 논의 자체를 거부하기보다는 '정권 연장용 개헌'의 부당함을 알리는 여론전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연임설을 일축하지 않는 한, 입법부 수장의 발언으로 촉발된 이번 개헌 정국은 여야 간의 극한 대치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이도다완의 비밀…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

는 야욕으로 이어졌고, 이는 결국 1592년 임진왜란이라는 비극을 초래했다. 하지만 이 전쟁의 이면에는 영토 확장 이상의 목적이 숨어 있었는데, 바로 조선의 독보적인 도자기 기술과 도공들을 확보하려는 문화적 약탈이었다. 당시 일본 지배층 사이에서 불어닥친 다도 열풍은 조선의 분청사기를 단순한 그릇 이상의 전략 자산으로 격상시켰다.전쟁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다도에 깊이 심취해 이를 통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한 인물이었다. 그는 다성 센 리큐를 스승으로 모시며 일본만의 독특한 다도 문화를 정립했다. 당시 일본 다도의 핵심은 가루차를 물에 풀어 마시는 말차였는데, 이를 담아내는 그릇인 다완은 차가 쉽게 식지 않도록 크고 묵직해야 했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중국산 다기에 반발해 소박하고 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일본 다도계는 조선의 투박한 분청사기에서 그들이 갈구하던 '와비·사비'의 정수를 발견했다.조선에서 막사발로 불리며 백성들이 밥그릇이나 국그릇으로 쓰던 생활 자기는 일본 상인과 무사들의 눈에 최고의 명물로 비쳤다. 완벽한 대칭보다는 비대칭의 자연스러움을, 매끄러움보다는 투박한 질감을 지닌 막사발은 일본 다도가 추구하는 무소유와 평온의 철학에 완벽히 부합했다. 특히 그릇 밑부분에 뭉친 유약의 거친 감촉이 일본도의 손잡이와 유사하다는 점은 사무라이들의 소유욕을 자극했다. 조선의 흔한 흙으로 빚은 그릇이 일본에서는 성 한 채와 바꿀 정도의 귀한 대접을 받게 된 배경이다.실제로 일본 교토 다이도쿠치가 소장한 일본 국보 26호 '이도다완'은 조선의 이름 없는 도공이 만든 막사발이다. 조선의 생활용품이 일본의 국보가 된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임진왜란이 왜 '도자기 전쟁'으로 불리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히데요시는 침공 직후 조선의 유능한 도공들을 잡아오라는 칙령을 내릴 정도로 도자기 기술 확보에 집착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조선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갔고, 찬란했던 분청사기의 맥은 조선 땅에서 끊기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고흥 운암산 서쪽의 운대리 일대는 이러한 분청사기의 황금기를 증언하는 귀중한 유적지다. 이곳에는 청자와 분청사기 가마터 30여 개소가 밀집해 있어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자기 변천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유약에 그릇을 통째로 담갔다 빼는 '덤벙 분청사기'는 고흥 운대리에서 독보적인 예술적 경지에 올랐다. 꾸밈없는 순백의 미를 자랑하는 덤벙 분청사기는 조선 도자기 미학의 정점으로 평가받으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조선의 분청사기는 한 나라의 국보가 되기도, 한 나라의 기술 단절을 가져오기도 했다. 고흥 운암산의 가마터는 그 찬란했던 예술혼과 전쟁의 상흔을 동시에 품은 채 오늘날 우리 곁에 남아 있다. 400여 년 전 일본 무사들이 성을 내주면서까지 갖고 싶어 했던 조선 막사발의 진정한 가치는, 비대칭의 투박함 속에 담긴 우리 민족의 소박하고도 강인한 생명력에 있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