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업

현대차, 브라질 전용 하이브리드 개발 박차

 현대자동차그룹이 중남미 최대 시장인 브라질을 거점으로 글로벌 모빌리티 영토 확장에 박차를 가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최근 상파울루주 피라시카바에 위치한 현지 생산 공장을 직접 찾아 중장기 성장 전략을 점검하고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이번 방문은 급변하는 글로벌 자동차 산업 환경 속에서 브라질을 친환경 에너지와 첨단 모빌리티의 핵심 기지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공표하기 위해 마련됐다. 정 회장은 현지 생산 라인을 꼼꼼히 살피며 위기 극복을 통한 단계적 도약을 강조했다.

 

브라질 시장 공략의 핵심은 현지 맞춤형 친환경차 라인업의 확대에 있다. 현대차는 브라질의 독특한 연료 생태계를 고려해 휘발유와 에탄올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FFV-HEV) 전용 파워트레인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높은 관세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소형 전기차의 현지 생산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다. 특히 2030년까지 인기 모델인 크레타를 필두로 다양한 차급의 SUV 모델을 순차적으로 출시해 시장 점유율을 공고히 한다는 구상이다.

 


단순한 차량 판매를 넘어선 수소 생태계 구축도 이번 전략의 중추를 담당한다. 현대차는 재생에너지 잠재력이 풍부한 브라질의 특성을 활용해 그린 수소 생산부터 수소연료전지 시스템 공급까지 밸류체인 전반을 아우르는 신사업을 발굴할 계획이다. 수소 상용차와 수소 트램 등 모빌리티 신시장 개척은 물론, 재생에너지 발전소 구축까지 사업 영역을 넓혀 중남미 지역의 에너지 전환을 선도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현지 연구개발(R&D) 역량 강화 역시 정 회장이 강조한 핵심 과제 중 하나다. 정 회장은 중남미권역 R&D센터를 방문해 파워트레인의 현지화와 기술 자립도를 높일 것을 주문했다. 이는 브라질 시장의 특수성을 반영한 제품 개발이 지속 가능한 경쟁력 확보의 관건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현지에서 설계하고 생산한 기술이 실제 판매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확립해 글로벌 경쟁국들과의 격차를 벌리겠다는 전략적 포석이 깔려 있다.

 


현대차 브라질 공장은 지난 3월 누적 생산 250만 대를 돌파하며 그룹 내 핵심 생산 거점으로서의 위상을 증명했다. 정 회장은 13년 만에 이뤄낸 이 기록이 임직원들의 헌신과 팀워크 덕분이라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는 지난달부터 생산을 시작한 i20와 주력 SUV인 크레타의 품질 상태를 직접 확인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현장에서의 완벽한 품질 관리임을 재차 확인했다.

 

미래 모빌리티 시장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현대차의 브라질 행보는 향후 중남미 전체 시장으로의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수소와 재생에너지를 결합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자동차 제조사를 넘어 에너지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하려는 현대차그룹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브라질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추진되는 이번 대규모 프로젝트들은 현대차가 남미 시장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도다완의 비밀…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

는 야욕으로 이어졌고, 이는 결국 1592년 임진왜란이라는 비극을 초래했다. 하지만 이 전쟁의 이면에는 영토 확장 이상의 목적이 숨어 있었는데, 바로 조선의 독보적인 도자기 기술과 도공들을 확보하려는 문화적 약탈이었다. 당시 일본 지배층 사이에서 불어닥친 다도 열풍은 조선의 분청사기를 단순한 그릇 이상의 전략 자산으로 격상시켰다.전쟁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다도에 깊이 심취해 이를 통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한 인물이었다. 그는 다성 센 리큐를 스승으로 모시며 일본만의 독특한 다도 문화를 정립했다. 당시 일본 다도의 핵심은 가루차를 물에 풀어 마시는 말차였는데, 이를 담아내는 그릇인 다완은 차가 쉽게 식지 않도록 크고 묵직해야 했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중국산 다기에 반발해 소박하고 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일본 다도계는 조선의 투박한 분청사기에서 그들이 갈구하던 '와비·사비'의 정수를 발견했다.조선에서 막사발로 불리며 백성들이 밥그릇이나 국그릇으로 쓰던 생활 자기는 일본 상인과 무사들의 눈에 최고의 명물로 비쳤다. 완벽한 대칭보다는 비대칭의 자연스러움을, 매끄러움보다는 투박한 질감을 지닌 막사발은 일본 다도가 추구하는 무소유와 평온의 철학에 완벽히 부합했다. 특히 그릇 밑부분에 뭉친 유약의 거친 감촉이 일본도의 손잡이와 유사하다는 점은 사무라이들의 소유욕을 자극했다. 조선의 흔한 흙으로 빚은 그릇이 일본에서는 성 한 채와 바꿀 정도의 귀한 대접을 받게 된 배경이다.실제로 일본 교토 다이도쿠치가 소장한 일본 국보 26호 '이도다완'은 조선의 이름 없는 도공이 만든 막사발이다. 조선의 생활용품이 일본의 국보가 된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임진왜란이 왜 '도자기 전쟁'으로 불리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히데요시는 침공 직후 조선의 유능한 도공들을 잡아오라는 칙령을 내릴 정도로 도자기 기술 확보에 집착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조선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갔고, 찬란했던 분청사기의 맥은 조선 땅에서 끊기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고흥 운암산 서쪽의 운대리 일대는 이러한 분청사기의 황금기를 증언하는 귀중한 유적지다. 이곳에는 청자와 분청사기 가마터 30여 개소가 밀집해 있어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자기 변천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유약에 그릇을 통째로 담갔다 빼는 '덤벙 분청사기'는 고흥 운대리에서 독보적인 예술적 경지에 올랐다. 꾸밈없는 순백의 미를 자랑하는 덤벙 분청사기는 조선 도자기 미학의 정점으로 평가받으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조선의 분청사기는 한 나라의 국보가 되기도, 한 나라의 기술 단절을 가져오기도 했다. 고흥 운암산의 가마터는 그 찬란했던 예술혼과 전쟁의 상흔을 동시에 품은 채 오늘날 우리 곁에 남아 있다. 400여 년 전 일본 무사들이 성을 내주면서까지 갖고 싶어 했던 조선 막사발의 진정한 가치는, 비대칭의 투박함 속에 담긴 우리 민족의 소박하고도 강인한 생명력에 있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