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슈

300만 넘긴 ‘호프’, 평점 극과 극…장관 “결말 직접 보라”

나홍진 감독의 신작 영화 ‘호프’를 둘러싼 관객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직접 관람평을 남겨 눈길을 끌었다. 흥행 성적은 빠르게 쌓이고 있지만 결말과 장르적 완성도를 두고 평가가 갈리면서, 영화계 안팎의 관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최 장관은 26일 자신의 SNS에 ‘호프’를 관람한 소감을 올렸다. 그는 “역대급 압도적 스케일의 한국형 SF 블록버스터를 보고 왔다”며 “156분 동안 손에 땀을 쥐며 무더위를 날린 것만으로도 만족했다”고 밝혔다. 이어 영화가 초반의 수상한 분위기에서 점차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액션과 스릴, 공포, 서스펜스, 괴수물, 어드벤처, SF, 블랙유머까지 여러 장르를 넘나든다고 평했다.

 


특히 최 장관은 관객 사이에서 가장 큰 논쟁 지점으로 꼽히는 결말에 대해 “호불호가 엇갈린다는 마지막 결말은 직접 보고 판단해 보시라”고 적었다. 그는 나홍진 감독과 출연진을 향해 “재미있고 멋진 영화를 선사해줘 감사하다”며 개봉 11일 만에 300만 관객을 넘긴 데 대해서도 축하의 뜻을 전했다.

 

지난 15일 개봉한 ‘호프’는 나홍진 감독이 ‘곡성’ 이후 10년 만에 선보인 신작이다. 영화는 가상의 비무장지대 호포항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초현실적 사건을 다룬 SF 액션 스릴러다. 개봉 전부터 나 감독의 복귀작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고, 개봉 이후에도 빠른 속도로 관객을 모으며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25일에는 누적 관객 수 300만명을 돌파했다.

 

다만 관객 평가는 흥행 성적만큼 일방적이지 않다. 실관람객 평가를 반영하는 CGV 에그지수는 27일 기준 83%를 기록했고, 네이버 실관람 평점은 10점 만점에 7.3점 수준에 머물렀다. 높은 점수를 준 관객도 많지만, 낮은 점수를 준 관객 비율 역시 적지 않아 작품을 둘러싼 온도 차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네이버 실관람평에서는 “나홍진 감독이 아니라 홍명보 감독이 찍은 게 틀림없다”는 혹평성 한줄평이 큰 공감을 얻으며 논란을 상징하는 사례로 거론되기도 했다.

 

호불호 논쟁은 평론가를 향한 공격으로도 번졌다.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호프’에 별점 4점, 5점 만점 기준 높은 평가를 내리며 “기괴한 난장판 속에서 대담하게 질주하는 영화”라고 평했다. 이후 일부 누리꾼들이 나 감독과의 친분이나 이름값, 경제적 이유 등을 들어 평가의 공정성을 문제 삼자, 이 평론가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해명에 나섰다.

 


이 평론가는 “나홍진 감독과 친분이 없다”며 “‘호프’에 대한 호평은 감독이 누구인지와 무관하다”고 밝혔다. 그는 “나 감독을 좋아해서 영화가 좋은 것이 아니라, 좋은 영화를 계속 만들어왔기 때문에 창작자로서 좋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호프’에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상쇄할 만큼 강력한 장점과 독창성, 재미가 있다고 재차 평가했다.

 

이어 그는 영화에 대한 평가는 서로 다를 수 있다며 “훌륭하다는 것은 나의 의견이고, 형편없다는 것은 당신의 의견”이라고 강조했다. 다수 의견이 곧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며, 서로 다른 감상도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취지다.

 

‘호프’는 흥행과 논쟁을 동시에 끌어안은 작품이 됐다. 300만 관객 돌파로 대중적 관심은 입증했지만, 결말과 장르적 실험성을 두고 관객 반응은 여전히 갈리고 있다. 최 장관의 관람평까지 더해지면서 ‘호프’를 둘러싼 논쟁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이도다완의 비밀…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

는 야욕으로 이어졌고, 이는 결국 1592년 임진왜란이라는 비극을 초래했다. 하지만 이 전쟁의 이면에는 영토 확장 이상의 목적이 숨어 있었는데, 바로 조선의 독보적인 도자기 기술과 도공들을 확보하려는 문화적 약탈이었다. 당시 일본 지배층 사이에서 불어닥친 다도 열풍은 조선의 분청사기를 단순한 그릇 이상의 전략 자산으로 격상시켰다.전쟁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다도에 깊이 심취해 이를 통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한 인물이었다. 그는 다성 센 리큐를 스승으로 모시며 일본만의 독특한 다도 문화를 정립했다. 당시 일본 다도의 핵심은 가루차를 물에 풀어 마시는 말차였는데, 이를 담아내는 그릇인 다완은 차가 쉽게 식지 않도록 크고 묵직해야 했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중국산 다기에 반발해 소박하고 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일본 다도계는 조선의 투박한 분청사기에서 그들이 갈구하던 '와비·사비'의 정수를 발견했다.조선에서 막사발로 불리며 백성들이 밥그릇이나 국그릇으로 쓰던 생활 자기는 일본 상인과 무사들의 눈에 최고의 명물로 비쳤다. 완벽한 대칭보다는 비대칭의 자연스러움을, 매끄러움보다는 투박한 질감을 지닌 막사발은 일본 다도가 추구하는 무소유와 평온의 철학에 완벽히 부합했다. 특히 그릇 밑부분에 뭉친 유약의 거친 감촉이 일본도의 손잡이와 유사하다는 점은 사무라이들의 소유욕을 자극했다. 조선의 흔한 흙으로 빚은 그릇이 일본에서는 성 한 채와 바꿀 정도의 귀한 대접을 받게 된 배경이다.실제로 일본 교토 다이도쿠치가 소장한 일본 국보 26호 '이도다완'은 조선의 이름 없는 도공이 만든 막사발이다. 조선의 생활용품이 일본의 국보가 된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임진왜란이 왜 '도자기 전쟁'으로 불리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히데요시는 침공 직후 조선의 유능한 도공들을 잡아오라는 칙령을 내릴 정도로 도자기 기술 확보에 집착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조선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갔고, 찬란했던 분청사기의 맥은 조선 땅에서 끊기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고흥 운암산 서쪽의 운대리 일대는 이러한 분청사기의 황금기를 증언하는 귀중한 유적지다. 이곳에는 청자와 분청사기 가마터 30여 개소가 밀집해 있어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자기 변천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유약에 그릇을 통째로 담갔다 빼는 '덤벙 분청사기'는 고흥 운대리에서 독보적인 예술적 경지에 올랐다. 꾸밈없는 순백의 미를 자랑하는 덤벙 분청사기는 조선 도자기 미학의 정점으로 평가받으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조선의 분청사기는 한 나라의 국보가 되기도, 한 나라의 기술 단절을 가져오기도 했다. 고흥 운암산의 가마터는 그 찬란했던 예술혼과 전쟁의 상흔을 동시에 품은 채 오늘날 우리 곁에 남아 있다. 400여 년 전 일본 무사들이 성을 내주면서까지 갖고 싶어 했던 조선 막사발의 진정한 가치는, 비대칭의 투박함 속에 담긴 우리 민족의 소박하고도 강인한 생명력에 있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