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업

SK하이닉스 40조 투자, AI 거품론 정면 돌파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 인프라 시장의 성장 둔화 우려를 정면으로 돌파하며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40조 원대 후반까지 대폭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지난해 투자액인 30조 원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역대급 규모로, 주요 고객사들과의 장기 공급 계약을 통해 수요의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자신감이 바탕이 됐다. 회사는 생산 능력을 단계적으로 확충해 차세대 메모리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단기적으로는 청주 M15X 공장의 가동 시점을 앞당기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첫 번째 팹이 완공되는 대로 즉각적인 양산 체제에 돌입할 수 있도록 사전 투자를 집중할 계획이다. 생산 거점별로 이천과 용인은 차세대 D램과 AI 메모리의 핵심 기지로, 청주는 낸드플래시와 첨단 패키징의 전략적 요충지로 육성한다는 이원화 전략을 세웠다. 해외 생산 기지 확대에 대해서는 전력과 인력 등 여러 제반 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입장이다.

 


최근 시장 일각에서 제기된 AI 투자 거품론에 대해서도 명확한 선을 그었다. 빅테크 기업들의 고효율 모델 도입은 투자 축소가 아니라 오히려 AI 서비스의 확산과 인프라 활용도를 높이는 수익화 과정이라는 분석이다. 고효율 모델이 등장할수록 서비스 접근성이 좋아져 전체적인 메모리 수요는 오히려 늘어날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에 따라 내년 이후에도 글로벌 클라우드 사업자들의 인프라 투자는 견조하게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SK하이닉스는 5년 단위의 장기 공급 계약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단순한 물량 약속을 넘어 고객사의 구매 확약과 예치금 등 강제성 있는 장치를 포함해 수요 가시성을 높였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계약 구조는 업황 변동에 따른 실적 하락 위험을 방어하는 동시에, 시장 상황이 좋을 때 추가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차세대 제품인 HBM4 시장에서도 기술적 우위를 자신하고 있다. 이미 주요 고객사에 대한 공급을 시작한 HBM4는 양산 수율과 품질 면에서 안정 궤도에 진입했으며, 2027년 양산을 목표로 한 차세대 제품 개발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특히 HBM은 일반 D램보다 공정이 복잡하고 자원 투입이 많은 만큼, 단순 시세보다는 제품이 제공하는 차별화된 가치에 걸맞은 적정 수익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실적 면에서도 압도적인 성과를 거뒀다. 올해 2분기 매출 약 79조 원, 영업이익 60조 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특히 76%에 달하는 영업이익률은 AI 메모리 시장의 독보적인 경쟁력을 입증하는 지표로 풀이된다. 하반기에는 고부가가치 제품의 출하가 본격화되면서 실적 개선 폭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이며, 추론용 AI 시장 확대에 따른 기업용 저장장치 수요 대응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이도다완의 비밀…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

는 야욕으로 이어졌고, 이는 결국 1592년 임진왜란이라는 비극을 초래했다. 하지만 이 전쟁의 이면에는 영토 확장 이상의 목적이 숨어 있었는데, 바로 조선의 독보적인 도자기 기술과 도공들을 확보하려는 문화적 약탈이었다. 당시 일본 지배층 사이에서 불어닥친 다도 열풍은 조선의 분청사기를 단순한 그릇 이상의 전략 자산으로 격상시켰다.전쟁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다도에 깊이 심취해 이를 통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한 인물이었다. 그는 다성 센 리큐를 스승으로 모시며 일본만의 독특한 다도 문화를 정립했다. 당시 일본 다도의 핵심은 가루차를 물에 풀어 마시는 말차였는데, 이를 담아내는 그릇인 다완은 차가 쉽게 식지 않도록 크고 묵직해야 했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중국산 다기에 반발해 소박하고 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일본 다도계는 조선의 투박한 분청사기에서 그들이 갈구하던 '와비·사비'의 정수를 발견했다.조선에서 막사발로 불리며 백성들이 밥그릇이나 국그릇으로 쓰던 생활 자기는 일본 상인과 무사들의 눈에 최고의 명물로 비쳤다. 완벽한 대칭보다는 비대칭의 자연스러움을, 매끄러움보다는 투박한 질감을 지닌 막사발은 일본 다도가 추구하는 무소유와 평온의 철학에 완벽히 부합했다. 특히 그릇 밑부분에 뭉친 유약의 거친 감촉이 일본도의 손잡이와 유사하다는 점은 사무라이들의 소유욕을 자극했다. 조선의 흔한 흙으로 빚은 그릇이 일본에서는 성 한 채와 바꿀 정도의 귀한 대접을 받게 된 배경이다.실제로 일본 교토 다이도쿠치가 소장한 일본 국보 26호 '이도다완'은 조선의 이름 없는 도공이 만든 막사발이다. 조선의 생활용품이 일본의 국보가 된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임진왜란이 왜 '도자기 전쟁'으로 불리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히데요시는 침공 직후 조선의 유능한 도공들을 잡아오라는 칙령을 내릴 정도로 도자기 기술 확보에 집착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조선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갔고, 찬란했던 분청사기의 맥은 조선 땅에서 끊기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고흥 운암산 서쪽의 운대리 일대는 이러한 분청사기의 황금기를 증언하는 귀중한 유적지다. 이곳에는 청자와 분청사기 가마터 30여 개소가 밀집해 있어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자기 변천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유약에 그릇을 통째로 담갔다 빼는 '덤벙 분청사기'는 고흥 운대리에서 독보적인 예술적 경지에 올랐다. 꾸밈없는 순백의 미를 자랑하는 덤벙 분청사기는 조선 도자기 미학의 정점으로 평가받으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조선의 분청사기는 한 나라의 국보가 되기도, 한 나라의 기술 단절을 가져오기도 했다. 고흥 운암산의 가마터는 그 찬란했던 예술혼과 전쟁의 상흔을 동시에 품은 채 오늘날 우리 곁에 남아 있다. 400여 년 전 일본 무사들이 성을 내주면서까지 갖고 싶어 했던 조선 막사발의 진정한 가치는, 비대칭의 투박함 속에 담긴 우리 민족의 소박하고도 강인한 생명력에 있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