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운전자 바꿔치기 도운 경찰, ‘향찰’ 유착의 민낯

 경찰 총수가 부실 수사 논란에 대해 고개를 숙이며 재발 방지를 약속하던 그 시각, 일선 현장에서는 여전히 조직적인 수사 정보 유출이 자행되고 있었다. 지난달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던 날, 대구에서는 음주 뺑소니를 저지른 현직 경사를 돕기 위해 간부급 경찰관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인 정황이 포착되었다. 이들은 수사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피의자가 법망을 피해 갈 수 있도록 조력했으며, 이는 경찰 조직 내부의 유착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선언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음이 드러나며 경찰을 향한 비판 여론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대구경찰청 소속 전 모 경사가 술을 마신 채 운전하다 주차된 차량을 들이받고 도주하면서 시작되었다. 사고 다음 날 수사팀은 CCTV 분석을 통해 전 경사를 피의자로 특정했으나, 이때부터 관할 지구대장이 수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지구대장은 피의자의 부친과 지인 관계임을 내세워 수사 상황을 캐물었고, 담당 수사관은 목격자 유무와 구체적인 혐의 내용을 상세히 전달했다. 사실상 경찰 내부의 공조 체계가 범죄 사실을 은폐하고 대응 논리를 마련해 주는 '범죄 조력 네트워크'로 변질된 셈이다.

 


유출된 수사 정보는 즉각 '운전자 바꿔치기'라는 대담한 범죄로 이어졌다. 전 경사의 부인은 사고 사흘 뒤 경찰에 출석해 자신이 운전대를 잡았다고 거짓 자백을 했다. 하지만 수사팀 내부에서 이미 "남자가 운전했다는 목격자 진술이 확보됐다"는 정보가 지구대장을 통해 전 경사 측에 전달되자, 이들은 뒤늦게 자백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수사 기관의 핵심 정보가 피의자의 전략 수립에 실시간으로 활용된 이번 사례는 경찰 수사의 공정성이 내부 유착에 의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경찰은 관련자들을 직위해제하고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공정성을 위해 사건을 인접 경찰서로 이송하고 피의자 부친의 주거지까지 압수수색하는 등 뒤늦게 엄정 대응에 나섰으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수사 정보 유출 의혹을 처음 포착한 곳이 해당 경찰서 내부였다는 점은, 자정 작용이 작동했다기보다 사안의 파장이 커질 것을 우려한 선제적 조치였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이번 사건은 경찰이 독점한 수사권이 내부 비리를 덮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현실로 만들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이번 사태를 엄중하게 바라보며 경찰의 비대해진 권한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 대통령은 하반기 업무보고 자리에서 지역 근무 경찰과 토착 세력 간의 유착을 뜻하는 '향찰' 문제를 언급하며,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 이후 경찰 내부에서 사건을 암장하기가 더욱 수월해진 측면이 있다고 질타했다. 법무부와 대검찰청 또한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내릴 경우 인지 사건들이 사실상 종결되는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며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국가 수사 구조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대통령의 진단은 향후 대대적인 사법 개편을 예고하고 있다.

 

경찰은 국가수사본부장 직속의 내부비리수사대를 신설하고 순환인사제와 상피제를 도입하는 등 고강도 쇄신책을 내놓았으나 국민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수사권 독립이라는 명분 아래 비대해진 권력이 내부 통제 시스템마저 무력화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한 인사 제도 개편만으로 유착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경찰이 진정한 수사 주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자성뿐만 아니라, 외부의 객관적인 감시를 수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번 대구 경찰 유착 사건은 대한민국 경찰이 직면한 가장 뼈아픈 자화상이자 개혁의 시급성을 알리는 마지막 경고음이다.

 

루이 15세가 연 문, 드 브노쥬의 변신

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후, 파리의 샹젤리제를 능가하는 가치를 지닌 거리로 평가받는다. 겉보기에는 궁전 같은 저택들이 줄지어 선 평범한 대로처럼 보이지만, 주민들이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거리'라고 부르는 진짜 이유는 지표면 아래에 숨겨져 있다. 이 대로의 발밑에는 무려 110km에 달하는 거대한 지하 까브가 뻗어 있으며, 그 안에는 약 2억 병의 샴페인이 숙성되며 천문학적인 자산 가치를 형성하고 있다.화려한 저택들의 외관과 달리 거리는 의외로 고요하다. 대로변에 늘어선 명문 샴페인 하우스들 중 상당수는 일반 방문객에게 문을 열지 않은 채 굳게 닫혀 있다. 윈스턴 처칠이 평생 사랑했던 샴페인으로 유명한 '폴 로저' 하우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곳은 관광객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보다 오로지 지하에서 술을 빚고 재우는 양조 본연의 업무에만 집중한다. 대로 위로 흐르는 정적은 곧 지하에서 최상급 샴페인이 차분히 익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이며, 이들에게 거리는 관광지이기 이전에 치열한 삶의 현장인 셈이다.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폐쇄적인 전통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1837년 설립된 '드 브노쥬' 하우스는 2015년 대형 브랜드 중 최초로 대로변 저택에 호텔과 샴페인 바를 열며 대중과의 소통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전통을 훼손한다는 비판도 있었으나, 현재는 많은 하우스가 벤치마킹할 정도로 성공적인 럭셔리 관광 모델로 자리 잡았다. 드 브노쥬의 최상급 라인인 '루이 15세'는 1728년 칙령을 통해 샴페인의 병입 운송을 허가하며 산업의 기틀을 닦은 왕의 이름을 딴 것으로, 하우스의 개방적인 행보와 그 궤를 같이한다.에페르네의 도심을 벗어나 차로 10분 정도 이동하면 '코트 데 블랑'이라 불리는 하얀 언덕의 절경이 펼쳐진다. 크라망 마을의 능선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샤도네이 포도밭은 샴페인의 순수한 기원을 보여준다. 이곳의 흙을 살짝만 파헤쳐도 드러나는 하얀 백악토는 랭스의 지하 갱도에서 보았던 것과 동일한 성분이다. 이 특수한 토양은 빗물을 머금었다가 포도나무 뿌리에 서서히 공급하며, 포도알 속에 샴페인 특유의 팽팽한 산미와 짭조름한 미네랄 풍미를 새겨넣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지하의 거대한 까브와 지상의 백악질 토양은 에페르네를 세계 유일의 공간으로 만드는 두 축이다. 110km의 갱도 속에 잠든 2억 병의 샴페인은 단순한 상품을 넘어 이 지역의 역사와 자부심을 지탱하는 근간이다.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침묵의 양조 방식과 새롭게 등장한 개방형 관광 서비스가 공존하면서, 아브뉴 드 샹파뉴는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문화 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방문객들은 화려한 저택의 대문 너머로 흐르는 정적 속에서 샴페인이 완성되기까지 필요한 인고의 시간을 체감하게 된다.결국 에페르네가 지닌 진정한 가치는 눈에 보이는 화려함보다 보이지 않는 지하의 시간에 있다. 백악질 토양에서 자란 포도가 지하 갱도에서 수년간의 잠을 거쳐 황금빛 거품으로 피어나기까지, 이 거리는 그 모든 과정을 묵묵히 품어왔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거리라는 명성은 단순히 돈으로 환산된 수치가 아니라, 자연이 준 선물인 백악토와 인간의 집념이 만들어낸 지하 세계가 빚어낸 합작품이다. 샴페인의 향연이 시작되는 이 거리는 오늘도 지상의 정적과 지하의 생동감 사이에서 그 위엄을 지켜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