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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은정 재입학 고민 "학교 얘기하면 민망해"

 그룹 티아라 출신 배우 함은정이 10여 년의 공백을 깨고 멈췄던 학업을 다시 시작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함은정은 최근 자신의 개인 유튜브 채널에 동국대학교 캠퍼스를 방문해 재입학 가능성을 타진하는 영상을 올리며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07학번으로 입학했던 그는 데뷔 전 배우의 꿈을 안고 학교에 들어갔으나, 티아라 활동이 본격화되면서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함은정은 과거 1학년 과정을 마친 뒤 휴학을 선택했으나, 복귀 이후 살인적인 스케줄 탓에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불가능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등록금을 납부하고도 수업에 참여하지 못해 결국 제적 처리가 되었던 아픈 기억을 공유하며, 졸업장을 따지 못한 상태에서 모교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 늘 민망했다고 고백했다. 오랜만에 찾은 캠퍼스 지리가 낯설어 당황해하는 그의 모습은 화려한 연예계 활동 이면에 숨겨진 학업에 대한 갈증을 짐작게 했다.

 


재입학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나이였다. 함은정은 제작진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벌써 교수직을 맡아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되었다며, 어린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언젠가는 졸업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격려에 용기를 내어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그는 1학년 시절 연기 과목에서 A학점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학업에 대한 미련과 자신감을 동시에 내비쳤다.

 

상담을 담당한 교수는 함은정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건네며 용기를 북돋웠다. 졸업을 위해 채워야 할 학점이 94학점이나 남았다는 사실에 함은정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교수는 한꺼번에 무리하기보다 작품 활동과 학업을 병행하며 차근차근 학점을 적립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연예계 활동 중 기회를 놓치고 뒤늦게 학교로 돌아와 졸업장을 거머쥔 선후배들의 사례를 언급하며 함은정의 복귀를 독려했다.

 


교수의 정년퇴임 전까지는 꼭 졸업하자는 약속을 뒤로하고 상담실을 나온 함은정의 표정에는 복잡한 심경이 교차했다. 그는 내년의 운명이 올해 겨울이 되어야 결정될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는 단순히 학위를 취득하는 문제를 넘어, 배우로서의 커리어와 개인적인 성취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중견 연예인의 실존적인 고민이 투영된 대목으로 풀이된다.

 

함은정의 이번 행보는 학업을 중단했던 많은 성인 학습자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 화려한 스타의 삶을 뒤로하고 다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려는 그의 진정성 있는 태도는 대중의 응원을 이끌어내고 있다. 과연 그가 내년 봄 다시 책가방을 메고 캠퍼스로 돌아올 수 있을지, 그의 최종 선택에 연예계와 팬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함은정의 재입학 도전은 이제 단순한 개인의 선택을 넘어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있다.

 

부산 밀면의 시초 내호냉면, 100년 역사의 향기

동 소막마을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깃든 상징적인 장소다. 일제강점기 한우를 수탈해 일본으로 보내기 위해 지어졌던 거대한 소 막사들은 전쟁이 터지자 갈 곳 없는 피란민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짐승이 머물던 축사에 사람이 들어가 다락방을 만들고 삶을 이어갔던 이 독특한 주거 형태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비극적 역사의 산물이다.소막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부산의 대표 음식인 밀면의 탄생 비화와 마주하게 된다. 함경남도 흥남에서 피란 내려온 일가가 1919년부터 이어온 냉면의 전통을 부산에서 다시 꽃피운 것이 그 시작이다. 전쟁 직후 메밀을 구하기 힘들었던 시절, 구호 물자로 받은 밀가루를 냉면 제조 방식에 접목해 탄생한 것이 바로 부산 밀면이다.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이 노포는 단순한 음식점을 넘어 척박한 피란 살이 속에서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던 실향민들의 슬픔을 달래주던 안식처였다.피란민들의 또 다른 눈물이 서린 곳은 영도다리라고 불리는 영도대교다. 1934년 준공된 국내 최초의 연륙교이자 도개교인 이곳은 헤어진 가족을 찾으려는 이산가족들이 매일같이 모여들던 만남의 광장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은 "살아있다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는 약속 하나로 모진 세월을 견뎠다. 다리의 한쪽 끝이 하늘을 향해 들리는 생경한 풍경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재회를 향한 희망의 상징이었으며, 수많은 대중가요의 소재가 되어 피란민들의 고달픈 삶을 대변했다.영도다리는 원래 피란수도 유산 목록에 없었으나 그 역사적 상징성을 인정받아 최근 추가로 등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과거 하루에 많게는 일곱 번씩 배가 지나갈 때마다 다리를 들어 올렸던 도개 행사는 1960년대에 중단되었다가 2013년에 이르러서야 재개되었다. 현재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만 다리가 올라가는 장관을 볼 수 있어, 이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다리 주변은 매주 장인인산해를 이룬다. 다리가 들리는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은 70여 년 전 이곳에서 가족을 기다리던 이들의 간절함을 되새긴다.부산의 산복도로와 항구 주변에 흩어진 이 유산들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인류의 회복력을 보여준다. 소 막사를 집으로 개조하고 밀가루로 냉면을 만들어 먹으며 이산가족을 기다리던 그 시절의 기록은 이제 인류 공통의 유산으로 보존될 준비를 하고 있다. 유네스코 자문기구의 현지 실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부산시는 이들 유산이 지닌 역사적 진정성을 알리기 위해 소막마을의 원형 복원과 영도다리 주변의 역사 공원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피란수도 부산의 1,023일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웠던 시기인 동시에 가장 강인했던 시간이었다. 소막마을의 밀면 향기와 영도다리의 도개 소리는 세대를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역사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세계유산 등재 추진은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한국인의 생명력을 세계에 증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부산의 골목마다 스며있는 피란 시절의 기억은 이제 평화를 염원하는 전 세계인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될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