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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 에트나 화산, 시칠리아 하늘길 9일째 마비

 유럽의 지붕이라 불리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에트나 화산이 거대한 화염과 재를 뿜어내며 여름 휴가철의 낭만을 잿빛으로 물들였다. 지난주부터 시작된 화산 활동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상공을 뒤덮었으며, 이로 인해 시칠리아의 관문인 카타니아 공항의 기능은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졌다. 수백 편의 항공기가 지상에 묶이면서 수만 명의 여행객이 공항 터미널 바닥이나 수하물 벨트 위에서 밤을 지새우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자연의 경이로움이 인간의 이동권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으로 변모한 순간이다.

 

항공 대란의 규모는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미 700편이 넘는 비행 일정이 취소되거나 변경되었으며, 인근 몰타 국제공항까지 화산재의 영향권에 들어가면서 지중해 전체의 항공 네트워크가 휘청이고 있다. 카타니아 공항 측은 안전을 위해 활주로 폐쇄와 재개방을 반복하고 있으나,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화산재를 치워내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현지에 고립된 관광객들은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과 숙소 확보의 어려움으로 인해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며 아수라장이 된 공항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탈리아 당국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비상 대응 체제에 돌입했다. 카타니아 공항으로 향하지 못한 승객들을 위해 인근 공항으로의 회항을 유도하고, 이들을 수송하기 위한 특별 열차와 셔틀버스를 긴급 편성했다. 공항 내부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배치되어 식수와 생필품을 전달하며 고립된 이들을 달래고 있지만, 휴가철 성수기와 겹친 탓에 현장의 혼란을 완전히 잠재우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여행객들의 즐거워야 할 휴가는 화산재와 싸우는 생존의 현장으로 뒤바뀌어 버렸다.

 

경제적 타격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시칠리아 경제협회는 이번 화산 분화로 인한 관광업계의 손실액이 최대 400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숙박 예약 취소와 음식점 매출 급감은 물론, 항공사들의 보상 문제까지 겹치면서 지역 경제 전반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유럽에서 가장 활발한 활화산이라는 명성이 평소에는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효자 노릇을 했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지역의 생존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지질학계에서도 이번 분화의 양상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탈리아 국립지질화산연구소는 에트나 화산의 여러 지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용암이 분출되는 현상이 매우 이례적이라고 진단했다. 통상적인 분화보다 화산재 배출 기간이 길어지고 있어 항공 운항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용암이 산비탈을 타고 흘러내리는 장관이 연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기 중으로 퍼진 미세한 화산재 입자가 항공기 엔진에 심각한 손상을 줄 수 있어 운항 재개 결정은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현재 화산 활동은 폭발적인 단계에서는 다소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나, 분출이 언제 완전히 멈출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화산 내부의 압력 변화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며 추가 분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시칠리아를 찾은 수만 명의 관광객은 여전히 하늘길이 열리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며 화산의 눈치를 보고 있다.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 인간이 세운 정교한 휴가 계획과 항공 시스템이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에트나 화산은 묵묵히 증명하고 있다.

 

 

 

부산 밀면의 시초 내호냉면, 100년 역사의 향기

동 소막마을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깃든 상징적인 장소다. 일제강점기 한우를 수탈해 일본으로 보내기 위해 지어졌던 거대한 소 막사들은 전쟁이 터지자 갈 곳 없는 피란민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짐승이 머물던 축사에 사람이 들어가 다락방을 만들고 삶을 이어갔던 이 독특한 주거 형태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비극적 역사의 산물이다.소막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부산의 대표 음식인 밀면의 탄생 비화와 마주하게 된다. 함경남도 흥남에서 피란 내려온 일가가 1919년부터 이어온 냉면의 전통을 부산에서 다시 꽃피운 것이 그 시작이다. 전쟁 직후 메밀을 구하기 힘들었던 시절, 구호 물자로 받은 밀가루를 냉면 제조 방식에 접목해 탄생한 것이 바로 부산 밀면이다.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이 노포는 단순한 음식점을 넘어 척박한 피란 살이 속에서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던 실향민들의 슬픔을 달래주던 안식처였다.피란민들의 또 다른 눈물이 서린 곳은 영도다리라고 불리는 영도대교다. 1934년 준공된 국내 최초의 연륙교이자 도개교인 이곳은 헤어진 가족을 찾으려는 이산가족들이 매일같이 모여들던 만남의 광장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은 "살아있다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는 약속 하나로 모진 세월을 견뎠다. 다리의 한쪽 끝이 하늘을 향해 들리는 생경한 풍경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재회를 향한 희망의 상징이었으며, 수많은 대중가요의 소재가 되어 피란민들의 고달픈 삶을 대변했다.영도다리는 원래 피란수도 유산 목록에 없었으나 그 역사적 상징성을 인정받아 최근 추가로 등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과거 하루에 많게는 일곱 번씩 배가 지나갈 때마다 다리를 들어 올렸던 도개 행사는 1960년대에 중단되었다가 2013년에 이르러서야 재개되었다. 현재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만 다리가 올라가는 장관을 볼 수 있어, 이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다리 주변은 매주 장인인산해를 이룬다. 다리가 들리는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은 70여 년 전 이곳에서 가족을 기다리던 이들의 간절함을 되새긴다.부산의 산복도로와 항구 주변에 흩어진 이 유산들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인류의 회복력을 보여준다. 소 막사를 집으로 개조하고 밀가루로 냉면을 만들어 먹으며 이산가족을 기다리던 그 시절의 기록은 이제 인류 공통의 유산으로 보존될 준비를 하고 있다. 유네스코 자문기구의 현지 실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부산시는 이들 유산이 지닌 역사적 진정성을 알리기 위해 소막마을의 원형 복원과 영도다리 주변의 역사 공원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피란수도 부산의 1,023일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웠던 시기인 동시에 가장 강인했던 시간이었다. 소막마을의 밀면 향기와 영도다리의 도개 소리는 세대를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역사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세계유산 등재 추진은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한국인의 생명력을 세계에 증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부산의 골목마다 스며있는 피란 시절의 기억은 이제 평화를 염원하는 전 세계인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될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