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큐브

전재수 '관사 없는 시장', 만덕동 자택서 출퇴근

 부산시의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화려한 관사 대신 소박한 자택을 선택하면서 지역 사회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전재수 부산시장은 취임 이후 별도의 공관을 마련하지 않고 북구 만덕동에 위치한 본인의 아파트에서 시청으로 출퇴근하는 방식을 고수하는 중이다. 이는 과거 권위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지자체장 관사 문화를 탈피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되며, 실무 중심의 시정을 펼치겠다는 시장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이러한 결정의 배경에는 전임 시장 시절부터 추진된 공관의 시민 환원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과거 부산시장들이 머물렀던 수영구 남천동 공관은 이미 리모델링을 거쳐 복합문화공간인 '도모헌'으로 탈바꿈하여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갔다. 40년 가까이 권력의 중심지였던 공간이 카페와 정원, 강연장으로 변모하면서 시장이 머물 수 있는 물리적 공간 자체가 사라진 셈이다. 전 시장은 새로운 관사를 마련하기 위해 혈세를 투입하는 대신 기존의 생활 터전을 유지하는 실용적인 선택을 내렸다.

 


시 당국은 당초 연제구 소재의 시 보유 아파트를 관사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전 시장이 이를 정중히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은 평소 도보 이동이 가능한 생활권을 선호해왔으나, 시청 인근에서 적절한 후보지를 찾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행정적 낭비를 경계했다. 결국 자신의 정치적 고향이자 오랜 삶의 터전인 북구 만덕동에서 시민들과 섞여 출퇴근하는 것이 시정 파악과 지역 민심 청취에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전 시장의 북구에 대한 남다른 애착도 이번 결정에 큰 몫을 차지했다. 그는 과거 구청장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러 차례 낙선의 고배를 마시면서도 끝까지 지역구를 지키며 3선 의원까지 지낸 인물이다. 정치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긴 북구를 떠나지 않겠다는 결정은 지역 주민들에게 강한 신뢰를 주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홀로 계신 노모를 모시기 위해 아내와 함께 어머니 집으로 거처를 옮긴 개인적인 사연이 알려지면서 효심 깊은 시장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까지 더해졌다.

 


시민들에게 개방된 기존 공관 '도모헌'은 현재 부산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급부상하며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모모스커피 등 유명 브랜드가 입점하고 아름다운 정원이 조성되면서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부산시는 시장이 외빈을 접견하거나 공식적인 연회가 필요한 경우에만 도모헌의 특정 공간을 한시적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이는 공적 자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면서도 시장의 업무 수행에 차질이 없도록 하려는 합리적인 절충안으로 평가받는다.

 

전 시장의 '관사 없는 시장' 실험은 향후 다른 지자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관사 유지에 들어가는 막대한 관리비와 인건비를 절감하는 것은 물론, 시장이 시민과 같은 눈높이에서 일상을 공유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임기 내내 자택 출퇴근 원칙을 지키겠다고 공언한 전 시장의 행보가 부산시정에 어떤 실질적인 변화를 불러올지 주목된다. 부산시는 앞으로도 시장의 이동 동선을 고려한 효율적인 업무 지원 체계를 유지하며 시민 중심의 행정을 이어갈 계획이다.

 

부산 밀면의 시초 내호냉면, 100년 역사의 향기

동 소막마을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깃든 상징적인 장소다. 일제강점기 한우를 수탈해 일본으로 보내기 위해 지어졌던 거대한 소 막사들은 전쟁이 터지자 갈 곳 없는 피란민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짐승이 머물던 축사에 사람이 들어가 다락방을 만들고 삶을 이어갔던 이 독특한 주거 형태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비극적 역사의 산물이다.소막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부산의 대표 음식인 밀면의 탄생 비화와 마주하게 된다. 함경남도 흥남에서 피란 내려온 일가가 1919년부터 이어온 냉면의 전통을 부산에서 다시 꽃피운 것이 그 시작이다. 전쟁 직후 메밀을 구하기 힘들었던 시절, 구호 물자로 받은 밀가루를 냉면 제조 방식에 접목해 탄생한 것이 바로 부산 밀면이다.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이 노포는 단순한 음식점을 넘어 척박한 피란 살이 속에서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던 실향민들의 슬픔을 달래주던 안식처였다.피란민들의 또 다른 눈물이 서린 곳은 영도다리라고 불리는 영도대교다. 1934년 준공된 국내 최초의 연륙교이자 도개교인 이곳은 헤어진 가족을 찾으려는 이산가족들이 매일같이 모여들던 만남의 광장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은 "살아있다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는 약속 하나로 모진 세월을 견뎠다. 다리의 한쪽 끝이 하늘을 향해 들리는 생경한 풍경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재회를 향한 희망의 상징이었으며, 수많은 대중가요의 소재가 되어 피란민들의 고달픈 삶을 대변했다.영도다리는 원래 피란수도 유산 목록에 없었으나 그 역사적 상징성을 인정받아 최근 추가로 등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과거 하루에 많게는 일곱 번씩 배가 지나갈 때마다 다리를 들어 올렸던 도개 행사는 1960년대에 중단되었다가 2013년에 이르러서야 재개되었다. 현재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만 다리가 올라가는 장관을 볼 수 있어, 이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다리 주변은 매주 장인인산해를 이룬다. 다리가 들리는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은 70여 년 전 이곳에서 가족을 기다리던 이들의 간절함을 되새긴다.부산의 산복도로와 항구 주변에 흩어진 이 유산들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인류의 회복력을 보여준다. 소 막사를 집으로 개조하고 밀가루로 냉면을 만들어 먹으며 이산가족을 기다리던 그 시절의 기록은 이제 인류 공통의 유산으로 보존될 준비를 하고 있다. 유네스코 자문기구의 현지 실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부산시는 이들 유산이 지닌 역사적 진정성을 알리기 위해 소막마을의 원형 복원과 영도다리 주변의 역사 공원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피란수도 부산의 1,023일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웠던 시기인 동시에 가장 강인했던 시간이었다. 소막마을의 밀면 향기와 영도다리의 도개 소리는 세대를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역사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세계유산 등재 추진은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한국인의 생명력을 세계에 증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부산의 골목마다 스며있는 피란 시절의 기억은 이제 평화를 염원하는 전 세계인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될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