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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 출신 싱글맘의 반란, 미 정계 흔든 40% 득표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사상 첫 한국계 주지사 탄생을 꿈꿨던 프란체스카 홍 주 하원의원의 도전이 간발의 차이로 멈춰 섰다. 현지시간 12일 치러진 민주당 주지사 예비선거에서 홍 후보는 개표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접전을 벌였으나, 당 주류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데이비드 크롤리 후보에게 0.4%포인트 차이로 무릎을 꿇었다. 비록 최종 승리는 놓쳤지만, 이민자 2세 여성이자 진보 정치인으로서 보수색이 짙은 경합주에서 거둔 성적표는 미 정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셰프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홍 후보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 철저하게 서민과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스스로를 싱글맘이자 세입자라고 정의한 그는 무상 보육과 최저임금 인상, 대기업 과세 강화 등 파격적인 진보 공약을 내세워 젊은 층과 풀뿌리 조직의 열렬한 지지를 끌어냈다. 특히 최근 급증하는 데이터센터 건설에 대해 환경과 전기료 문제를 이유로 유예안을 제시한 것은 기술 산업의 무분별한 확장에 경종을 울리며 정책적 선명성을 부각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홍 후보의 선전이 거세질수록 상대 진영의 견제와 공격도 극에 달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까지 가세한 '색깔론' 공세는 선거 막판 중도층 표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 경찰 예산 삭감 지지 발언이나 추수감사절 관련 SNS 게시물 등이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보수 매체들은 그를 '위험한 사회주의자'로 몰아세웠다. 민주당 지도부 역시 본선에서의 외연 확장성을 우려해 홍 후보 대신 중도 성향의 크롤리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며 당내 세력 대결 양상을 띠기도 했다.

 

이번 경선 결과는 단순히 한 후보의 낙선을 넘어 미국 민주당 내부에 흐르는 변화의 기류를 명확히 보여준다. 정치 전문가들은 홍 후보가 당 주류의 조직적인 방어벽을 뚫고 40%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기록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의미하며, 향후 민주당의 정책 기조가 더욱 왼쪽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홍 후보의 패배는 끝이 아닌, 새로운 진보 운동의 시작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홍 후보는 낙선 확정 직후 지지자들 앞에서 당당한 모습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는 우리가 만든 변화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며, 정치를 바꾸기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선거 캠프 측 역시 깨끗하고 진정성 있는 캠페인을 통해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점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비록 주지사 관저 입성에는 실패했지만, 위스콘신 최초의 아시아계 의원으로서 쌓아온 정치적 자산은 이번 경선을 통해 더욱 단단해진 모습이다.

 

이제 위스콘신의 시선은 11월 본선으로 향하고 있다.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크롤리는 공화당의 톰 티파니 의원과 주지사 자리를 놓고 격돌하게 된다. 홍 후보를 지지했던 진보적 유권자들의 표심이 본선에서 크롤리에게 온전히 흡수될지가 민주당 승리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한편, 경선 과정에서 보여준 홍 후보의 정책적 대안과 풀뿌리 조직력은 향후 미국 내 한인 정치인들의 위상을 높이는 중요한 이정표로 남게 됐다.

 

부산 밀면의 시초 내호냉면, 100년 역사의 향기

동 소막마을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깃든 상징적인 장소다. 일제강점기 한우를 수탈해 일본으로 보내기 위해 지어졌던 거대한 소 막사들은 전쟁이 터지자 갈 곳 없는 피란민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짐승이 머물던 축사에 사람이 들어가 다락방을 만들고 삶을 이어갔던 이 독특한 주거 형태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비극적 역사의 산물이다.소막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부산의 대표 음식인 밀면의 탄생 비화와 마주하게 된다. 함경남도 흥남에서 피란 내려온 일가가 1919년부터 이어온 냉면의 전통을 부산에서 다시 꽃피운 것이 그 시작이다. 전쟁 직후 메밀을 구하기 힘들었던 시절, 구호 물자로 받은 밀가루를 냉면 제조 방식에 접목해 탄생한 것이 바로 부산 밀면이다.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이 노포는 단순한 음식점을 넘어 척박한 피란 살이 속에서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던 실향민들의 슬픔을 달래주던 안식처였다.피란민들의 또 다른 눈물이 서린 곳은 영도다리라고 불리는 영도대교다. 1934년 준공된 국내 최초의 연륙교이자 도개교인 이곳은 헤어진 가족을 찾으려는 이산가족들이 매일같이 모여들던 만남의 광장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은 "살아있다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는 약속 하나로 모진 세월을 견뎠다. 다리의 한쪽 끝이 하늘을 향해 들리는 생경한 풍경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재회를 향한 희망의 상징이었으며, 수많은 대중가요의 소재가 되어 피란민들의 고달픈 삶을 대변했다.영도다리는 원래 피란수도 유산 목록에 없었으나 그 역사적 상징성을 인정받아 최근 추가로 등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과거 하루에 많게는 일곱 번씩 배가 지나갈 때마다 다리를 들어 올렸던 도개 행사는 1960년대에 중단되었다가 2013년에 이르러서야 재개되었다. 현재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만 다리가 올라가는 장관을 볼 수 있어, 이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다리 주변은 매주 장인인산해를 이룬다. 다리가 들리는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은 70여 년 전 이곳에서 가족을 기다리던 이들의 간절함을 되새긴다.부산의 산복도로와 항구 주변에 흩어진 이 유산들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인류의 회복력을 보여준다. 소 막사를 집으로 개조하고 밀가루로 냉면을 만들어 먹으며 이산가족을 기다리던 그 시절의 기록은 이제 인류 공통의 유산으로 보존될 준비를 하고 있다. 유네스코 자문기구의 현지 실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부산시는 이들 유산이 지닌 역사적 진정성을 알리기 위해 소막마을의 원형 복원과 영도다리 주변의 역사 공원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피란수도 부산의 1,023일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웠던 시기인 동시에 가장 강인했던 시간이었다. 소막마을의 밀면 향기와 영도다리의 도개 소리는 세대를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역사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세계유산 등재 추진은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한국인의 생명력을 세계에 증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부산의 골목마다 스며있는 피란 시절의 기억은 이제 평화를 염원하는 전 세계인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될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