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슈

키아프 앞둔 전초전, 서울·케이옥션 대격돌

 국내 미술 시장의 최대 성수기인 9월 '키아프-프리즈 서울' 주간을 앞두고 메이저 경매사들이 한국 근현대 미술의 정수를 담은 걸작들을 대거 쏟아낸다.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은 각각 오는 25일과 26일, 총 150억 원 규모에 달하는 8월 정기 경매를 개최하며 시장의 열기를 끌어올릴 예정이다. 이번 경매는 단순한 상업적 거래를 넘어,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거장들의 미공개 수작들이 시장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컬렉터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광복절 시즌과 맞물려 역사적 상징성이 큰 유묵까지 출품되어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라인업을 자랑한다.

 

케이옥션의 이번 경매에서 가장 주목받는 주인공은 단연 박수근이다. 작가의 전성기였던 1950년대에 제작된 '나무와 여인'은 그의 핵심 후원자였던 마거릿 밀러 여사가 소장했던 작품으로, 무려 40여 년 만에 일반 대중 앞에 공개된다. 소박하면서도 단단한 질감으로 한국적 정서를 구현한 이 작품은 학술적 가치와 희소성을 동시에 인정받으며 높은 추정가를 형성하고 있다. 이와 함께 화려한 색채로 독자적인 여인상을 구축한 천경자의 수작도 경매에 올라, 한국 근현대 미술을 지탱해온 두 거장의 예술적 대결이 성사될 전망이다.

 


최근 회고전을 통해 재조명받고 있는 이대원의 작품들도 이번 경매의 관전 포인트다. 화가이자 교육자, 그리고 박수근을 도왔던 후원자로서 한국 미술사의 기틀을 닦았던 그의 화업은 '농원'과 '소나무' 등 대표 연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원색의 점묘법과 거침없는 붓질로 자연의 생명력을 포착한 그의 회화는 최근 시장에서 다시금 가치를 인정받는 분위기다. 이대원의 출품작들은 그가 반도화랑을 운영하며 한국 미술의 세계화를 꿈꿨던 열정을 상기시키며, 중견 및 원로 컬렉터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서울옥션은 김창열과 김환기라는 두 거대한 산맥을 앞세워 응찰자들을 유혹한다. 특히 1981년 프랑스 파리 피악(FIAC)에 출품되어 현지 언론의 극찬을 받았던 김창열의 100호 대작 '물방울'이 국내 경매 시장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캔버스 위에서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한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하는 이 작품은 김창열 예술의 절정기를 보여주는 지표로 평가받는다. 또한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가 뉴욕 시기에 제작한 전면점화 계열의 대작도 출품되어, 한국 미술의 국제적 위상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미술 섹션에서는 백범 김구 선생의 서예 작품 '독립만세'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1948년 1월, 해방 정국의 혼란 속에서도 자주독립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선생의 결연한 필치가 담긴 이 유묵은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 특히 올해가 김구 선생 탄생 150주년이라는 점과 광복절을 즈음해 경매가 열린다는 시의성이 맞물리며 응찰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옥션 측은 선생의 곧은 정신이 투영된 필획이 현대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것이라고 설명하며 이번 경매의 상징성을 강조했다.

 

이번 8월 경매는 9월에 열릴 국제적인 아트 축제를 앞두고 한국 미술의 저력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의 황톳빛 풍광을 이국적인 콜로세움에 이식한 변시지의 작품부터 거장들의 대형 추상화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의 작품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양대 경매사는 경매 당일까지 프리뷰 전시를 통해 일반 관객들에게도 출품작들을 무료로 공개하며 미술 대중화에 힘을 보탠다. 거장들의 숨결이 닿은 명작들이 침체된 경기 속에서도 미술 시장의 부활을 이끄는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부산 밀면의 시초 내호냉면, 100년 역사의 향기

동 소막마을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깃든 상징적인 장소다. 일제강점기 한우를 수탈해 일본으로 보내기 위해 지어졌던 거대한 소 막사들은 전쟁이 터지자 갈 곳 없는 피란민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짐승이 머물던 축사에 사람이 들어가 다락방을 만들고 삶을 이어갔던 이 독특한 주거 형태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비극적 역사의 산물이다.소막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부산의 대표 음식인 밀면의 탄생 비화와 마주하게 된다. 함경남도 흥남에서 피란 내려온 일가가 1919년부터 이어온 냉면의 전통을 부산에서 다시 꽃피운 것이 그 시작이다. 전쟁 직후 메밀을 구하기 힘들었던 시절, 구호 물자로 받은 밀가루를 냉면 제조 방식에 접목해 탄생한 것이 바로 부산 밀면이다.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이 노포는 단순한 음식점을 넘어 척박한 피란 살이 속에서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던 실향민들의 슬픔을 달래주던 안식처였다.피란민들의 또 다른 눈물이 서린 곳은 영도다리라고 불리는 영도대교다. 1934년 준공된 국내 최초의 연륙교이자 도개교인 이곳은 헤어진 가족을 찾으려는 이산가족들이 매일같이 모여들던 만남의 광장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은 "살아있다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는 약속 하나로 모진 세월을 견뎠다. 다리의 한쪽 끝이 하늘을 향해 들리는 생경한 풍경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재회를 향한 희망의 상징이었으며, 수많은 대중가요의 소재가 되어 피란민들의 고달픈 삶을 대변했다.영도다리는 원래 피란수도 유산 목록에 없었으나 그 역사적 상징성을 인정받아 최근 추가로 등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과거 하루에 많게는 일곱 번씩 배가 지나갈 때마다 다리를 들어 올렸던 도개 행사는 1960년대에 중단되었다가 2013년에 이르러서야 재개되었다. 현재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만 다리가 올라가는 장관을 볼 수 있어, 이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다리 주변은 매주 장인인산해를 이룬다. 다리가 들리는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은 70여 년 전 이곳에서 가족을 기다리던 이들의 간절함을 되새긴다.부산의 산복도로와 항구 주변에 흩어진 이 유산들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인류의 회복력을 보여준다. 소 막사를 집으로 개조하고 밀가루로 냉면을 만들어 먹으며 이산가족을 기다리던 그 시절의 기록은 이제 인류 공통의 유산으로 보존될 준비를 하고 있다. 유네스코 자문기구의 현지 실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부산시는 이들 유산이 지닌 역사적 진정성을 알리기 위해 소막마을의 원형 복원과 영도다리 주변의 역사 공원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피란수도 부산의 1,023일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웠던 시기인 동시에 가장 강인했던 시간이었다. 소막마을의 밀면 향기와 영도다리의 도개 소리는 세대를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역사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세계유산 등재 추진은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한국인의 생명력을 세계에 증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부산의 골목마다 스며있는 피란 시절의 기억은 이제 평화를 염원하는 전 세계인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될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