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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km 던지는 유격수…김성준 루키 평정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직행을 선택한 한국인 유망주들의 잔혹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텍사스 레인저스의 김성준이 독보적인 활약으로 '초대박' 조짐을 보이고 있다.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지난해 120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으며 태평양을 건넌 김성준은 미국 진출 첫해부터 투수와 타자 양면에서 압도적인 재능을 뽐내며 구단 내 핵심 유망주로 급부상했다. 최근 발표된 메이저리그 파이프라인의 유망주 순위에서 그는 입단 당시 15위였던 랭킹을 단숨에 8위까지 끌어올리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냈다.

 

김성준의 가장 큰 매력은 투타 겸업, 즉 '이도류'로서의 무한한 잠재력이다. 텍사스 구단은 계약 당시부터 그의 재능에 제약을 두지 않고 투타 병행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왔다. 현재 루키리그에서 타자로 나선 김성준은 48경기 동안 3할 초반대의 타율과 0.964라는 경이로운 OPS를 기록하며 정교함과 파워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투수로서도 150km를 상회하는 강속구를 뿌리며 1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등 마운드 위에서도 짠물 피칭을 이어가고 있다.

 


현지 스카우트들은 김성준의 다재다능함에 경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그가 야수와 투수 중 어느 쪽에서 더 대성할지를 두고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 타자로서는 우타석에서 보여주는 안정적인 타격 접근법과 향후 15개 이상의 홈런을 칠 수 있는 장타 잠재력이 높게 평가받는다. 유격수 자리에서의 견실한 수비력과 강한 어깨는 그를 내야의 핵심 자원으로 분류하게 만든다. 반면 투수로서는 최고 153km의 패스트볼과 예리한 슬라이더를 앞세워 타자들을 압도하는 구위를 자랑한다.

 

김성준의 빠른 적응 비결은 철저한 사전 준비와 성실함에 있다. 그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부터 단순히 야구 훈련에만 매몰되지 않고, 현지 생활의 필수 요소인 영어 공부와 학업을 병행하며 문화적 충격에 대비했다. 구단 관계자들은 그를 두고 나이답지 않게 성숙하고 훈련 태도가 진지한 선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러한 준비성이 뒷받침되었기에 낯선 미국 땅에서도 기복 없는 성적을 내며 상위 리그 승격을 눈앞에 둘 수 있었다.

 


한국인 유망주의 메이저리그 직행 역사를 돌이켜볼 때 김성준의 행보는 더욱 고무적이다. 과거 수많은 천재가 미국으로 향했지만, 마이너리그의 험난한 벽을 넘어 빅리그에 안착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현재 배지환을 제외하면 트리플A 단계에 진입한 한국인 유망주조차 전무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성준이 입단 1년 만에 구단 톱10 유망주에 진입한 것은, 과거 최희섭이나 이학주가 보여줬던 '전체 톱100' 진입의 꿈을 다시금 꾸게 만드는 희망적인 신호다.

 

물론 루키리그에서의 성공이 메이저리그 데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상위 리그로 올라갈수록 투수들의 구위와 타자들의 수준은 급격히 높아지며, 투타 겸업에 따른 체력적 부담도 본격화될 것이다. 메이저리그 파이프라인은 그의 데뷔 시기를 2030년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앞으로의 1~2년이 그의 최종 포지션과 성공 여부를 결정지을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성준이 한국인 최초의 진정한 메이저리그 이도류로 거듭날 수 있을지 야구계의 시선이 텍사스로 향하고 있다.

 

부산 밀면의 시초 내호냉면, 100년 역사의 향기

동 소막마을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깃든 상징적인 장소다. 일제강점기 한우를 수탈해 일본으로 보내기 위해 지어졌던 거대한 소 막사들은 전쟁이 터지자 갈 곳 없는 피란민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짐승이 머물던 축사에 사람이 들어가 다락방을 만들고 삶을 이어갔던 이 독특한 주거 형태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비극적 역사의 산물이다.소막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부산의 대표 음식인 밀면의 탄생 비화와 마주하게 된다. 함경남도 흥남에서 피란 내려온 일가가 1919년부터 이어온 냉면의 전통을 부산에서 다시 꽃피운 것이 그 시작이다. 전쟁 직후 메밀을 구하기 힘들었던 시절, 구호 물자로 받은 밀가루를 냉면 제조 방식에 접목해 탄생한 것이 바로 부산 밀면이다.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이 노포는 단순한 음식점을 넘어 척박한 피란 살이 속에서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던 실향민들의 슬픔을 달래주던 안식처였다.피란민들의 또 다른 눈물이 서린 곳은 영도다리라고 불리는 영도대교다. 1934년 준공된 국내 최초의 연륙교이자 도개교인 이곳은 헤어진 가족을 찾으려는 이산가족들이 매일같이 모여들던 만남의 광장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은 "살아있다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는 약속 하나로 모진 세월을 견뎠다. 다리의 한쪽 끝이 하늘을 향해 들리는 생경한 풍경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재회를 향한 희망의 상징이었으며, 수많은 대중가요의 소재가 되어 피란민들의 고달픈 삶을 대변했다.영도다리는 원래 피란수도 유산 목록에 없었으나 그 역사적 상징성을 인정받아 최근 추가로 등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과거 하루에 많게는 일곱 번씩 배가 지나갈 때마다 다리를 들어 올렸던 도개 행사는 1960년대에 중단되었다가 2013년에 이르러서야 재개되었다. 현재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만 다리가 올라가는 장관을 볼 수 있어, 이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다리 주변은 매주 장인인산해를 이룬다. 다리가 들리는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은 70여 년 전 이곳에서 가족을 기다리던 이들의 간절함을 되새긴다.부산의 산복도로와 항구 주변에 흩어진 이 유산들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인류의 회복력을 보여준다. 소 막사를 집으로 개조하고 밀가루로 냉면을 만들어 먹으며 이산가족을 기다리던 그 시절의 기록은 이제 인류 공통의 유산으로 보존될 준비를 하고 있다. 유네스코 자문기구의 현지 실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부산시는 이들 유산이 지닌 역사적 진정성을 알리기 위해 소막마을의 원형 복원과 영도다리 주변의 역사 공원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피란수도 부산의 1,023일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웠던 시기인 동시에 가장 강인했던 시간이었다. 소막마을의 밀면 향기와 영도다리의 도개 소리는 세대를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역사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세계유산 등재 추진은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한국인의 생명력을 세계에 증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부산의 골목마다 스며있는 피란 시절의 기억은 이제 평화를 염원하는 전 세계인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될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