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업

IT 기업보다 더 IT답게, 현대차 AI 전환 가속

 현대자동차그룹이 인공지능을 활용해 업무 방식부터 제조 현장까지 혁신하는 '사람 중심의 AX(AI 전환)' 비전을 선포하며 미래 모빌리티 시장의 주도권 굳히기에 나섰다. 12일 서울 양재 본사에서 열린 성과 발표회에서 현대차그룹은 지난 2019년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해 온 디지털 전환의 결실과 향후 로보틱스 및 제조 현장을 아우르는 피지컬 AI로의 확장 계획을 공개했다. 이번 혁신의 핵심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닌, 기술을 활용해 직원의 역량을 극대화하고 고객에게 더 높은 가치를 제공하는 '사람'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러한 변화의 시작은 2018년 정의선 회장이 선언한 'IT 기업보다 더 IT 기업 같은 회사'라는 경영 방침에서 비롯됐다. 현대차그룹은 단순한 시스템 교체를 넘어 전 세계 임직원이 동일한 환경에서 데이터를 공유하고 협업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반 플랫폼을 구축했다. 특히 연구개발부터 판매까지 전 과정의 데이터를 표준화한 '글로벌 원 데이터 파이프라인'은 흩어져 있던 정보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제품 개발과 공정 개선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든든한 토대가 됐다.

 


조직 내부에서는 생성형 AI 플랫폼인 '에이치 챗 프로'가 업무 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꾸고 있다. 보안이 강화된 환경에서 임직원들이 다양한 외부 AI 모델을 선택해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 결과, 연구직과 일반직의 80%에 달하는 3만 명 이상이 일상 업무에 AI를 활용 중이다. 문서 작성과 코드 개발 등 반복적인 업무를 AI가 보조하면서 직원들은 창의적이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업무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됐다.

 

연구개발 현장에서도 AI의 활약은 눈부시다. '충돌안전 AI 어시스턴트'는 방대한 과거 시험 자료와 이미지를 통합 분석해 엔지니어들의 정보 탐색 시간을 90%나 줄여주었다. 이를 통해 확보된 시간은 차량 설계 개선과 새로운 시험 전략 수립에 투입되어 더 안전한 자동차를 더 빠르게 개발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제조 공정 역시 비전 AI 기술을 활용한 자동 인식 서비스를 통해 차량 정보를 실시간 검증하며 연간 52억 원이 넘는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

 


서비스 영역에서는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데 AI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해외 정비 현장에 도입된 거대언어모델 기반 서비스는 정비사들이 문제 원인을 신속히 파악하도록 도와 대응 시간을 42% 단축했다. 또한 전 세계 고객의 리뷰를 AI가 자동으로 분석하고 답변 초안을 작성하는 솔루션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즉각적으로 차량 개선에 반영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적용을 넘어 고객과의 접점을 강화하는 전략적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AX 성과를 바탕으로 현실 세계와 AI가 결합하는 피지컬 AI 영역으로 혁신의 폭을 넓힐 방침이다. 축적된 데이터와 운영 노하우를 로보틱스와 스마트 팩토리 등 물리적 제조 현장에 이식해 모빌리티 산업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겠다는 포부다. 나아가 그룹 내에서 검증된 AI 전환 경험을 국내 중소기업 등 산업 전반에 확산시켜 국가 차원의 AI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하며 기술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갈 계획이다.

 

부산 밀면의 시초 내호냉면, 100년 역사의 향기

동 소막마을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깃든 상징적인 장소다. 일제강점기 한우를 수탈해 일본으로 보내기 위해 지어졌던 거대한 소 막사들은 전쟁이 터지자 갈 곳 없는 피란민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짐승이 머물던 축사에 사람이 들어가 다락방을 만들고 삶을 이어갔던 이 독특한 주거 형태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비극적 역사의 산물이다.소막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부산의 대표 음식인 밀면의 탄생 비화와 마주하게 된다. 함경남도 흥남에서 피란 내려온 일가가 1919년부터 이어온 냉면의 전통을 부산에서 다시 꽃피운 것이 그 시작이다. 전쟁 직후 메밀을 구하기 힘들었던 시절, 구호 물자로 받은 밀가루를 냉면 제조 방식에 접목해 탄생한 것이 바로 부산 밀면이다.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이 노포는 단순한 음식점을 넘어 척박한 피란 살이 속에서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던 실향민들의 슬픔을 달래주던 안식처였다.피란민들의 또 다른 눈물이 서린 곳은 영도다리라고 불리는 영도대교다. 1934년 준공된 국내 최초의 연륙교이자 도개교인 이곳은 헤어진 가족을 찾으려는 이산가족들이 매일같이 모여들던 만남의 광장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은 "살아있다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는 약속 하나로 모진 세월을 견뎠다. 다리의 한쪽 끝이 하늘을 향해 들리는 생경한 풍경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재회를 향한 희망의 상징이었으며, 수많은 대중가요의 소재가 되어 피란민들의 고달픈 삶을 대변했다.영도다리는 원래 피란수도 유산 목록에 없었으나 그 역사적 상징성을 인정받아 최근 추가로 등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과거 하루에 많게는 일곱 번씩 배가 지나갈 때마다 다리를 들어 올렸던 도개 행사는 1960년대에 중단되었다가 2013년에 이르러서야 재개되었다. 현재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만 다리가 올라가는 장관을 볼 수 있어, 이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다리 주변은 매주 장인인산해를 이룬다. 다리가 들리는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은 70여 년 전 이곳에서 가족을 기다리던 이들의 간절함을 되새긴다.부산의 산복도로와 항구 주변에 흩어진 이 유산들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인류의 회복력을 보여준다. 소 막사를 집으로 개조하고 밀가루로 냉면을 만들어 먹으며 이산가족을 기다리던 그 시절의 기록은 이제 인류 공통의 유산으로 보존될 준비를 하고 있다. 유네스코 자문기구의 현지 실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부산시는 이들 유산이 지닌 역사적 진정성을 알리기 위해 소막마을의 원형 복원과 영도다리 주변의 역사 공원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피란수도 부산의 1,023일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웠던 시기인 동시에 가장 강인했던 시간이었다. 소막마을의 밀면 향기와 영도다리의 도개 소리는 세대를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역사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세계유산 등재 추진은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한국인의 생명력을 세계에 증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부산의 골목마다 스며있는 피란 시절의 기억은 이제 평화를 염원하는 전 세계인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될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