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큐브

'조직'에 밀린 '바람'…정청래, 김민석에 완패 시인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대권 가도를 이끌 새로운 수장으로 김민석 의원이 선출되면서 야권의 권력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17일 열린 전당대회 결선 투표에서 김 후보는 최종 득표율 54.08%를 기록하며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정청래 후보를 제치고 당권을 거머쥐었다. 이번 결과는 당초 예상보다 큰 8%포인트 이상의 격차를 보이며 김 후보의 안정적인 당 장악력을 입증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고배를 마신 정청래 후보는 결과 발표 직후 패배를 겸허히 수용하며 상대 후보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그는 지지자들의 헌신적인 성원에 감사를 표하는 동시에, 이번 결과의 원인을 후보 개인의 역량 부족으로 돌리는 낮은 자세를 보였다. 정 후보는 선거 과정에서 불어온 변화의 바람이 기존의 견고한 당내 조직력을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시인했다.

 

 

 

정 후보는 특히 궁수와 명사수의 비유를 들어 자신의 부족함을 자책하는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그는 명사수라면 바람의 영향을 계산에 넣지 않고도 목표를 꿰뚫어야 했으나, 본인은 그러한 경지에 이르지 못해 지지자들에게 죄송하다는 심경을 밝혔다. 하지만 수치상의 패배가 지지자들이 품었던 정치적 열정과 가치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며 지지층 결집을 독려했다.

 

향후 행보에 대해서는 정권 교체를 향한 대승적 차원의 연대를 제안했다. 정 후보는 이재명 정부의 성공이 단순한 집권에 그치지 않고 정권 재창출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를 위해 범민주진보세력이 하나로 뭉쳐 당의 외연을 확장하고,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번 경선은 당내 조직력의 위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계기가 되었다. 정 후보 스스로도 조직이 바람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 순리지만, 이번에는 그 조직의 힘이 유독 강력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당내 기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는 향후 민주당 내부의 세력 재편 과정에서 조직 관리와 당심 확보가 핵심 과제가 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당 대표 선거에서 승리한 김민석 체제는 이제 정권 재창출을 위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패배한 정 후보가 당의 화합과 개혁을 강조하며 백의종군 의사를 밝힘에 따라, 신임 지도부는 경선 과정에서 분출된 다양한 목소리를 아우르는 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민주당은 이번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차기 대선을 향한 전열 정비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부산 밀면의 시초 내호냉면, 100년 역사의 향기

동 소막마을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깃든 상징적인 장소다. 일제강점기 한우를 수탈해 일본으로 보내기 위해 지어졌던 거대한 소 막사들은 전쟁이 터지자 갈 곳 없는 피란민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짐승이 머물던 축사에 사람이 들어가 다락방을 만들고 삶을 이어갔던 이 독특한 주거 형태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비극적 역사의 산물이다.소막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부산의 대표 음식인 밀면의 탄생 비화와 마주하게 된다. 함경남도 흥남에서 피란 내려온 일가가 1919년부터 이어온 냉면의 전통을 부산에서 다시 꽃피운 것이 그 시작이다. 전쟁 직후 메밀을 구하기 힘들었던 시절, 구호 물자로 받은 밀가루를 냉면 제조 방식에 접목해 탄생한 것이 바로 부산 밀면이다.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이 노포는 단순한 음식점을 넘어 척박한 피란 살이 속에서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던 실향민들의 슬픔을 달래주던 안식처였다.피란민들의 또 다른 눈물이 서린 곳은 영도다리라고 불리는 영도대교다. 1934년 준공된 국내 최초의 연륙교이자 도개교인 이곳은 헤어진 가족을 찾으려는 이산가족들이 매일같이 모여들던 만남의 광장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은 "살아있다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는 약속 하나로 모진 세월을 견뎠다. 다리의 한쪽 끝이 하늘을 향해 들리는 생경한 풍경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재회를 향한 희망의 상징이었으며, 수많은 대중가요의 소재가 되어 피란민들의 고달픈 삶을 대변했다.영도다리는 원래 피란수도 유산 목록에 없었으나 그 역사적 상징성을 인정받아 최근 추가로 등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과거 하루에 많게는 일곱 번씩 배가 지나갈 때마다 다리를 들어 올렸던 도개 행사는 1960년대에 중단되었다가 2013년에 이르러서야 재개되었다. 현재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만 다리가 올라가는 장관을 볼 수 있어, 이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다리 주변은 매주 장인인산해를 이룬다. 다리가 들리는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은 70여 년 전 이곳에서 가족을 기다리던 이들의 간절함을 되새긴다.부산의 산복도로와 항구 주변에 흩어진 이 유산들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인류의 회복력을 보여준다. 소 막사를 집으로 개조하고 밀가루로 냉면을 만들어 먹으며 이산가족을 기다리던 그 시절의 기록은 이제 인류 공통의 유산으로 보존될 준비를 하고 있다. 유네스코 자문기구의 현지 실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부산시는 이들 유산이 지닌 역사적 진정성을 알리기 위해 소막마을의 원형 복원과 영도다리 주변의 역사 공원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피란수도 부산의 1,023일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웠던 시기인 동시에 가장 강인했던 시간이었다. 소막마을의 밀면 향기와 영도다리의 도개 소리는 세대를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역사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세계유산 등재 추진은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한국인의 생명력을 세계에 증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부산의 골목마다 스며있는 피란 시절의 기억은 이제 평화를 염원하는 전 세계인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될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