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큐브

KIA 유니폼 입고 잠든 '양현종 스승' 칸베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사제지간으로 불리는 칸베 토시오 전 KIA 타이거즈 투수코치가 지난 15일 향년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2008년 한국 땅을 밟은 그는 단 2년이라는 짧은 재임 기간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유망주였던 양현종을 리그를 대표하는 대투수로 길러내며 타이거즈의 2009년 통합 우승을 견인했다. 그의 별세 소식은 일본 현지 매체보다도 먼저 그가 그토록 아꼈던 제자 양현종에게 전달되어 야구 팬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있다.

 

칸베 코치와 양현종의 인연은 단순한 코치와 선수의 관계를 넘어선 가족과도 같았다. 고졸 2년 차였던 양현종의 잠재력을 알아본 그는 혹독하면서도 따뜻한 지도로 제자의 첫 두 자릿수 승리를 이끌어냈다. 양현종은 평소 자신을 만들어준 은인으로 주저 없이 칸베 코치를 꼽아왔으며, 코치가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도 결혼식 초청은 물론 비시즌마다 일본 자택을 직접 방문하며 1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변함없는 예우를 갖춰왔다.

 


스승의 마지막 길 역시 타이거즈와 제자의 흔적으로 가득 찼다. 16일 가족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장에는 양현종이 선물한 글러브와 각종 기념품이 장식되었으며, 유족들은 고인이 생전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혀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칸베 코치의 딸은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한국 야구 중계를 챙겨볼 정도로 KIA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고 전하며, 슬픔보다는 미소로 고인의 야구 인생을 기렸다는 후문을 전했다.

 

고인은 양현종뿐만 아니라 함께 땀 흘렸던 동료들의 앞날도 늘 축복했다. 곽정철 코치의 부상 회복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함께 투수진을 이끌었던 이강철 감독이 국가대표 지휘봉을 잡았을 때 누구보다 기뻐하며 한국 야구의 발전을 응원했다. 국적은 달랐지만 그가 보여준 진심 어린 관심은 한국 지도자들에게도 큰 귀감이 되었으며, 이는 통역사였던 한근고 프로와 유족이 직접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의 깊은 신뢰 관계로 이어졌다.

 


비보가 전해진 순간, 양현종은 광주 마운드 위에서 혼신의 투구를 펼치고 있었다. 경기가 끝난 뒤에야 스승의 사망 소식을 접한 양현종은 큰 충격 속에서도 스승이 남긴 가르침을 되새기며 고인을 추모했다. 일본 야구계 인사들보다 먼저 제자에게 소식이 닿기를 바랐던 유족의 배려는, 칸베 코치가 생전 양현종이라는 선수를 얼마나 특별하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칸베 토시오라는 이름은 이제 기록 속에 남겠지만, 그가 심어놓은 장인정신과 제자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은 양현종의 왼손 끝에 남아 계속될 것이다. 두 시즌의 인연을 평생의 의리로 지켜낸 노스승은 마지막 순간까지 푸른 마운드와 붉은 유니폼을 그리워한 진정한 '타이거즈맨'이었다. 국경을 넘은 야구인들의 뜨거운 우정은 승패보다 중요한 스포츠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금 일깨워주며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남겼다.

 

 

 

'왕과 사는 남자' 효과… 영월 청령포 인산인해

곳의 상흔 남은 터전들이 새로운 문화적 숨결을 얻어 부활하는 중이다. 수백 년 전의 역사적 비극을 간직한 공간들이 잊히지 않고 대중의 발길을 끌어모으는 역설적인 풍경이 펼쳐지는 모습이다.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선풍적인 흥행 기록을 남긴 이후, 단종의 애달픈 서사가 서린 영월 청령포는 연일 몰려드는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상영이 완전히 끝난 이후에도 열기가 식지 않으면서 지역 상권과 숙박 시설은 이례적인 호황을 누리는 중이다. 한적했던 지방 소도시의 식당과 명소마다 대기 행렬이 이어지는 기현상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삼면이 강물로 둘러싸이고 뒤편은 가파른 절벽으로 막힌 청령포는 조선 6대 임금 단종이 유배 생활을 했던 천연의 고립지다.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17세의 어린 나이에 비극적인 생을 마감해야 했던 군주의 서글픈 역사는 자욱한 물안개 속 소나무 숲과 함께 서늘한 중압감으로 방문객을 맞이한다.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에는 단종이 기거했던 어소와 그 세월을 묵묵히 지켜본 관음송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통성을 지녔음에도 비운의 운명을 맞이해야 했던 단종의 삶은 오랫동안 풀어내지 못한 역사적 한으로 남아왔다. 천형과도 같았던 단절의 공간이 수백 년의 시간을 지나 대중과 호흡하는 장소로 변모한 셈이다.영화가 촉발한 역사의 재발견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미처 피어나지 못한 어린 영혼을 향한 애도와 추모의 발길로 승화되고 있다. 궂은 날씨 속에서도 청령포 선착장을 통해 강을 건너는 관광객들의 걸음은 끊이지 않는다. 과거 단절과 철폐의 대명사였던 유배지는 이제 안타까운 역사를 되새기고 위로를 나누는 열린 추모 공간으로 탈바꿈했다.쇠퇴해 가던 옛 광산촌과 역사적 유배지가 대중문화 콘텐츠와의 결합을 통해 지역 재생의 모범 사례로 거듭나고 있다. 비극적인 서사를 간직한 지역 유산들이 스토리텔링을 얻어 대중과 소통하면서, 멈춰 섰던 강원도 영월 일대의 시간은 새로운 활력과 함께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