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슈

벽에서 느껴지는 체온,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묻다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의 고요한 전시장 안, 천장에 매달린 물통에서 물방울이 하나둘 떨어진다. 뜨거운 플레이트에 닿은 물방울은 하얀 증기로 변해 사라지지만, 그 흔적은 주변 금속판을 녹슬게 하며 기묘한 그림을 완성한다. 작가가 직접 붓을 들지 않았음에도 시간과 자연의 섭리가 철판 위에 예술을 새겨 넣은 것이다. 이는 한국 개념미술의 독보적인 자취를 남긴 고(故) 우순옥 작가의 대표작 '연기드로잉'이 보여주는 찰나와 영원의 기록이다.

 

성곡미스트관에서 열리고 있는 회고전 '우순옥-예술은 이미 당신의 마음 속에 있다'는 작가의 1980년대 초기작부터 작고 직전의 유작까지 20여 점의 정수를 한자리에 모았다. 우순옥은 평생 존재와 기억,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시간의 층위를 탐구해온 예술가다. 그의 작업은 단순히 사물을 재현하는 차원을 넘어, 물질과 비물질 사이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철학적 질문들을 관객에게 던진다. 연필과 파스텔 같은 전통적 매체는 물론, 녹슨 철판과 식물, 낡은 가구 등 일상의 사물들은 그의 손을 거쳐 존재를 증명하는 매개체로 변모한다.

 


작가의 예술관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우연성'과 '비통제'다. 예술가가 모든 것을 의도하고 지배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그는 사물이 지닌 고유한 시간성과 자연스러운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앞서 언급한 연기드로잉처럼, 작가는 무대를 설정할 뿐 실제 그림을 완성하는 주체는 물방울과 수증기, 그리고 흐르는 시간이다. 이러한 태도는 삶의 유한함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피어나는 숭고한 가치를 발견하려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반영한다.

 

전시장 한편의 '따뜻한 벽'은 관람객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작품이다. 평범한 흰 벽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사람의 체온과 유사한 온기가 느껴진다.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라는 미술관의 불문율을 깨고, 관객은 벽을 만지며 그 안의 생명력을 감각해야 한다. 차갑고 단절된 공간을 상징하는 벽이 임신부의 배처럼 따스한 곡면과 온기를 품음으로써, 삶과 죽음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순환 고리 안에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또 다른 공간에서는 검은 면천 사이로 떠오른 달을 만날 수 있다. 천장에서 바닥까지 길게 늘어진 12장의 천 사이를 거닐다 보면, 관객은 거대한 우주 속에서 오직 자신만이 존재하는 사적인 방에 들어온 듯한 몰입감을 경험한다. 이화여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수학하며 다진 그의 조형 언어는 이처럼 정적인 미학 속에 깊은 철학적 사유를 담아내고 있다. 그는 오랜 시간 강단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개념적 지평을 넓히는 데 헌신했다.

 

이번 전시는 완성된 결과물로서의 예술이 아니라, 관객이 머무는 시간과 경험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과정으로서의 예술을 보여준다. 우순옥의 작품들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순간들이 사실은 얼마나 귀중한 기억의 조각인지를 일깨워준다. 작가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온기와 흔적은 10월 초까지 성곡미술관의 벽과 바닥, 그리고 관객의 마음속에 머물며 예술과 삶의 관계를 다시금 성찰하게 한다.

 

 

 

세계 최초 섬 박람회 개막, 여객선 반값에 즐긴다

넘어, 국내외 섬 요리를 한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역대급 미식 축제를 예고하고 있다. 여수의 대표 여름 별미인 갯장어 '하모'가 마지막 풍미를 자랑하는 8월 말부터 살이 오르기 시작한 가을 전어가 바통을 이어받는 시점에 맞춰, 박람회장은 전 세계 여행자들의 미각을 자극하는 허브가 될 전망이다.박람회의 핵심 거점 중 하나인 '식당·마켓섬'은 이번 행사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다. '바다와 섬의 밥상'이라는 테마 아래 구성된 이곳에서는 여수의 10미로 꼽히는 돌산갓김치와 게장백반은 물론, 평소 접하기 힘든 국내 외딴섬들의 향토 음식을 만날 수 있다. 특히 1,300여 석 규모의 대형 식당가에서는 한국의 섬 음식과 함께 탄두리치킨, 양고기 케밥 등 세계 각국의 섬나라 요리들이 나란히 차려져 이색적인 식도락 경험을 선사한다.지역 소상공인들이 직접 운영에 참여한다는 점은 이번 미식 축제의 진정성을 더한다. 여수 현지의 손맛을 그대로 살린 갓육회비빔밥이나 섬갓삼계탕 같은 특화 메뉴들은 관람객들에게 로컬 푸드의 진수를 보여줄 예정이다. 여기에 수산물을 활용한 공예품과 신선한 지역 특산물을 판매하는 마켓이 곁들여져, 단순히 먹는 즐거움을 넘어 섬 문화 전체를 소비하고 체험하는 복합적인 관광 모델을 제시한다.스타 셰프들이 참여하는 화려한 퍼포먼스도 관람객들의 기대를 모으는 요소다. '여수 섬 쿠킹쇼'에서는 안유성, 이원일 등 국내 정상급 요리사들이 여수의 제철 식재료를 활용해 즉석에서 창의적인 요리를 선보인다. 산지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이 셰프의 감각적인 손길을 거쳐 예술 작품 같은 요리로 재탄생하는 과정은 미식가들에게 잊지 못할 볼거리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순한 시식을 넘어 식재료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교육적 효과까지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박람회 기간 내내 이어지는 연계 행사들 또한 풍성하다. 5만 명 이상의 인파가 예상되는 '세계 김밥·소금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남도 K-가든 페스티벌까지, 61일간의 대장정 동안 여수 전역은 거대한 축제장으로 운영된다. 돌산 진모지구와 여수세계박람회장, 그리고 개도와 금오도 등 실제 섬 현장을 잇는 광범위한 행사장 구성은 관람객들이 여수 바다의 매력을 다각도에서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여수시는 이번 박람회의 성공적인 개최와 방문객 편의를 위해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놓았다. 행사 기간 중 여수를 찾는 타 지역 방문객들에게는 여수 관내를 운항하는 모든 여객선과 도선의 운임 50%를 지원하여 섬 여행의 문턱을 크게 낮췄다. 세계 최초의 섬 박람회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여수는 이번 행사를 통해 섬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과 미식 자원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며 국제적인 해양 관광 도시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다질 계획이다.